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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 something 2022. 4. 24. 22:57
예전에 한국에 있을 때는 캐나다 오기 전에 담배를 피웠습니다. 대학교 2학년인 20살에 시험을 앞에 두고 담배를 피우니 잠을 덜자고 시험공부를 할 수 있기에 시작된 담배는, 캐나다 오기 전인 2003년 경에 끊었으니, 거의 11년을 피웠네요. 그 사이 몇차례 끊어야지 생각을 했는데, 다른 분들 처럼 쉽게 끊어지지 않더군요. 2003년 경에 내년에 캐나다로 이민을 가야 하는데, 담배값이 어마 무지 할 것 같아서, '이것도 못 끊으면서 어떻게 캐나다 이민을 가지?'라고 생각을 하고, '나는 아예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라고 자기 취면을 걸어서 초콜렛과 사탕으로 참아가며 담배를 끊게 되었습니다. 2003년 이후 단 한 번도 담배를 피우지 않았으니 19년이 다 되어 가네요.
살아가면서 여러가지 목표를 세우죠, 운동을 열심히 한다던지, 식사를 조절 한다던지.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습관은 친구같이 가까이 하고, 나쁜 습관은 원수같이 멀리하는 것이 행복한 삶을 이끌어가는 원동역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근데,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계속 습관을 지속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해에 새해계획을 세우시는 분들은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작심삼일이라고 하루 이틀이 지나면, 우리의 뇌는 '괜찮아, 하루 이틀 안해도 아마 이상없어'라고 악마같이 속삭이고, 결국 이삼일 빠지기 시작하면 금방 호기심을 잃고 관심에서 멀어지게 되죠.
저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계속 이렇게 나의 습관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할 수 있고, 아주 간단하게 체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늘 찾고 있었습니다. 여러 GTD (Getting Things Done)에 관련된 책과 앱들도 찾아보고 했는데, 딱 원하는 기능에 맞는 것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렇다가, 얼마 전에 우연히 아직도 이런 앱이 없나 하고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딱 원하는 기능이 들어있는 앱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름은 한글로 "마이해빗"이고, 구글 안드로이드 스토어에 있더군요. 가격도 무료이고, 설치하면 아래에 작은 광고창이 뜨는데, 저한테는 아무 영향이 없는 것 같아서 너무 좋더군요.
그리고, 최근에 리디북스에서 책을 사서 읽고 있는데, 제목이 'Atomic habits (아주작은 습관의 힘), 제임스 클리어 저' 라는 책입니다. 어떻게 좋은 습관관 나쁜 습관을 나에게 잘 적용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책인데, 정말 강추하고 싶은 책입니다. 이미 베스트셀러로 유명한 책이긴 하더군요.
외국어를 배우든, 아이와 즐거움을 나누는 시간을 만들든, 작은 시간이라도 유용하게 쓰기 위해 노력한다면 우리의 삶이 조금 더 풍성해 지는 것 같아 이런 아이디어를 나누어 봅니다.
say something 2021. 1. 31. 08:34
즐겨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배성재의 텐인데, 거기에 게스트로 나오는 나미춘('나 미스 춘양이야' 의 줄임말)으로 불리는 윤태진 아니운서를 반 칠십이라고 배성재 아나운서가 몇 번을 놀려 먹는 걸 들으니, 언듯 예전에 제 25세 생일때 친한 후배가 꺽어진 쉰살이라고 놀리던게 생각이 나네요. 정확히 기억은 잘 안나지만, 대학교 4학년 때 쯤 되는 것 같습니다. 농담으로 한 말이라 웃으며 넘어갔지만, 그때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있을때라 그런지, 그 말을 듣고 하루이틀 정도 '과연 50세 때 나는 어떤 모습일까?' 라고 진지하게 고민한 기억이 어렴풋이 나네요.
회상해 보면 당시가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대학교 3학년때 휴학을 하고 1년을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고 있을때, 갑자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게 되어, 당장 내일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대학교 3학년에 학업을 그만두고 생계를 이어나가야 하나? 생각했었는데, 다행히 친척들이 입시일반 돈을 모아, 저의 대학 등록금과 저희 가족의 작은 집의 전세금을 마련해 주셔서 그나마 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교 4학년 때는 학업은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늘 학교 취업게시판을 몇년째 매일 지나치며, 뭐 하나 라도 해서, 생활비를 조금이라도 보태야 하는 상황이라, 마음이 뭔가 늘 부족하고 쫒기는 듯한 때 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마음에 여유라고는 찾을 수 없던 그때에는, 25살이 뭔가 학생 신분이라 아무것도 할 수가 없고, 뭐 하나도 맘에 들 수 없는 마음이 가난한 시간이었고, 대학교 4학년이라는 때가, 취업이 될지, 나중에 결혼은 할 수 있을지, 정말 쉰이란 나이가 오면 나는 어떤 모습일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얼핏 떠오른 모습은 '30세쯤 결혼을 해서, 20살이 약간 안된 두아이가 있는 작은 아파트에서 오손도손 사는 정말 정말 평범한 가정만 이루었다면 참 원이 없을텐데' 라고 어렴풋이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 캐나다에 살고 있어 만나이만 쓰다보니, 잘 인식을 못하고 있었는데, 오늘 우연히 나이를 따져보니, 그때 그렇게 궁금했던 한국나이로 쉰살(50)이 되었네요. 결혼은 생각보다 늦게 38살에 하고, 아이들은 훨씬 어린 11살과 9살 두 딸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대학교를 졸업한 후 바로 취업이 되어 한국에서 두 곳의 직장을 다녔구요. , 34살쯤에 한국에서의 9년 직장생활을 뒤로 하고 캐나다로 홀로 이민을 와서, 캐나다에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첫 직장을 어렵게 잡고,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30대를 다 보냈고, 이후 몬트리얼 이란 도시로 이사를 와서 두 아이가 생겨나면서 오랫동안 원했던 직장에서 10년을 일하면서 40대를 다 보냈네요. 한국의 아파트에 살지는 않지만, 몬트리얼의 외곽에 작은 2층 집을 얻어 두아이와 아내, 한국에서 어머니를 모셔와서 5명이 살고 있게 되었네요.
25년 전, 25세의 그 당시, 앞도 보이지 않고, 언제가 이 긴 터널의 끝일지 감히 엄두도 나지 않았던 불안감과 불안정에 잠도 쉬이 오지 않았던 당시의 나에게, 질풍노도 같은 30대와 정신없던 40대를 거쳐 어느덧 쉰이란 나이에 안착하게 된 나는 '그렇게 걱정하지 말아요' 라고 전해 주고 싶네요.
그리고, 칭찬해 주고 싶네요. 무작정 걱정만 하기 보다는 그래도 조금씩 대학교때, 한국에서 직장 다닐때 조금씩 영어 공부를 해서 작은 준비를 했고, 캐나다 이민을 준비하기 시작했을 때도, 그냥 남들 같이 포기 하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10여권을 캐나다 이민 서적을 사서 읽고 밤새워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도, 떠나기 한달 전에도 두려움에 떨었어도, 결국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세상을 위해 용기를 내었던 것도.
캐나다에 와서 영어도 안되는데, 34살에 대학원에 들어가 밤을 세며 실험을 해서, 결국 논문 디펜스를 하고 졸업하게 된 것도. 07년 서브 프라임 사태에도 정신없이 3000곳에 이력서를 들이밀며 1년여의 취업전쟁 끝에 한국갈 비행기 값도 없을 때, 기적적으로 캐나다에서 첫 취업에 성공했을때.
남들 보기에 그렇게 큰 일이 아닐지 몰라도, 매 순간 열심히 살았고, 잘 하려고 노력했고, 무식하게 앞으로만 가서 어느덧 쉰의 나이에 도달하게 되었네요. 지금도 어떤 이들은 25년의 나처럼 앞이 보이지 않고, 힘든 사람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특히. 지금 같은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에는 더욱더 그런 젊은 분들이 상상 할 수 없게 많겠죠. 무조건 열심히 해서 모두 다 성공할 수 있다고 감히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매 순간, 본인의 삶에 충실하고 어떤 결정의 순간을 위해 조금씩 조금씩 준비를 한다면, 오랜 시간이 지나 원하는 곳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say something 2011. 9. 21. 12:48
한국 나이론 이제 마흔, 여기 나이론 좀 남긴 했지만... 하여간, 오늘 문득 생각난 김에 늦은 시간이라도 까먹기 전에 남긴다. 오늘 아침 문득 지금이 나의 삶의 정점이 아닐까 란 생각이 들었다. 이것만은 꼭 하고 싶다고 작정한 3가지가 1) 대학원 2) 해외에 살아보기 3) 해외여행하기 였다. 어느덧 3가지가 나 나름대로 만족할만큼 충족되었고, 거기다 덤으로 정말 다니고 싶은 해외의 유명 항공회사에 석달전부터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저것 하느라 한참이나 늦어졌지만, 와이프도 얻고, 얼마전에는 첫 딸의 출산으로 남들 다하는 것들 마저 다 하게 되는것 같다.
돌이켜보면, 참 긴 시간인것 같다. 남들이 한창때라고 말하는 서른 중반에 캐나다로 넘어와 늦깍이 대학원생에, 졸업하자 거의 1년간 취업시장만 바라 보고 있을때는, 여기까지가 나의 한계인가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에, 조그마한 항공업체에 취직하게 되었고, 두 해가 지나며, 발전가능성이 낮아 보일때, 내가 이것 때문에 그 고생을 하며 지나온 건가 하는 자괴감도 들었다. 마지막에 레이오프라는 통보를 받은 후, 이제 어찌해야 하나 하는 고민과 절망의 순간에, 지금 다니는 회사에 연락이 왔고, 30분 정도의 전화인터뷰 후, 가능성이 별루 없을 거라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퍼를 받을 수 있었다.
19살에 나는 항공업이 앞으로 크게 성장할거란 막연한 기대감으로 전공을 선택하게 되었고, 그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나머지 20년을 살아온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한국의 항공시장은 너무 좁고, 세계적인 항공시장에 서고 싶었던 작은 바램은, 캐나다로의 이민을 선택하게 되었고, 수많은 밤과 낮 동안 고민하고 준비하며, 한번도 발 붙여 본적 없는 캐나다 땅을 2004년 12월 어느 추운 겨울날 무작정 날아왔다. 그로부터 7년을 대학원을 다니고, 취업준비하고, 약 3년간 작은 회사에 근무하다가, 지금에야 내가 가장 원했던 회사에 원하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한국의 항공회사(KAI)의 5년 경력과 자동차(대우정밀)의 3년 경력도 도움이 많이 되었으리라 생각이 든다. 어쩌면 한국에서의 대기업에 대한 실망감이 나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또한, 나를 내다 던질수 있었던 것은 한국에 남겨둘 미련이 적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쩌면 부양가족에 대한 부담이 적은 이때가 마지막이라 생각했기에 무모하게 도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누구에게나 고난에 두려움은 같다. 내가 늘 벼랑 끝에 내 몰렸을때 너무나 두려웠고, 마치 결코 이 고난을 이겨내지 못 할것 같았다. 하지만, 이 고난을 지나칠때마다 나는 조금더 많이 성숙해 지고 강해지는 것 같았다. 지금은 좋은 직장에 있지만 어느 순간 어떻게 될지 모르니 불안하긴 마찬가지이나, 그 동안 많은 고난에 내성이 생겼는지, 이제는 뭐 어떻게든 되겠지란 배짱이 약간 생긴것 같다. 사람들은 힘들것 같은 고난에 너무 과대포장해서 두려워하는 것 같다. 아마, 격어보지 못해서 더욱 그런 두려움이 큰 것 같다. 특히, 젊은층이 더 심한것 같다.
어느 누구도 고난과 현재 자신의 고민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즐거워하는 사람은 없다. 고통스럽고, 어서 이런 역경이 끝나기만을 바라지만, 어느 순간, 뒤돌아 보면, 내가 살아온 삶을 가치있게 만들어 준 것들이 이런 역경과 고난 속에서 자라났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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