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586건

  1. 2012.03.31 직장과 임금(연봉)
  2. 2012.03.24 해외 취업 절차는 어떻게 진행되는가? 2
  3. 2012.02.05 퀘백의 부모보험제도 (Quebec Parental Insurance Plan-QPIP)
  4. 2012.02.04 (해외)취업의 문, 좌절 그리고 성취 (Part 2) 5
  5. 2012.01.24 비행기 생산현장을 걷노라면... 3
  6. 2012.01.19 오후 2시 40분에 퇴근하는 사람들 (몬트리얼)
  7. 2011.12.02 (해외) 취업의 문, 부서질때까지 두드리기 (Part 1)
  8. 2011.11.23 한미 FTA, 규제철폐, 영화 'Too big to fail'
  9. 2011.11.14 세가지 꿈을 따라간 15년 인생살이 7
  10. 2011.10.25 Wireless Camera(WVC80N)로 꾸며보는 베이비 모니터

직장과 임금(연봉)

for_the_job 2012. 3. 31. 21:04

회사생활에서 임금이란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본인의 일에 대한 관심과 열정도 중요하고, 장래의 비젼이라든가, 승진가능성등 여러가지 측면에서 회사를 선택할때 고려하게 된다. 하지만, 임금이 전부는 아닐지라도, 굉장히 직장의 선택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지표중에 하나란걸 부정할 수 없는 것 같다.

때때로, 이러한 임금의 선택에 있어서 어떠한 방법으로 측정해야 하는지 궁금할때가 많다. 나는 많이 받고 있는지? 적게 받고 있는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는 일에 비해 적은 급여에 만족을 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흔히, 연봉이란 잣데로 그 사람이 얼마를 받는지, 혹은 급여를 정할때 연봉 얼마, 이런식으로 사용되곤 한다. 한국이나 캐나다(혹은 미국)도 마찬가지로, 때론 이 연봉에 상여금, 기타 여러 가지 부가적인 수입이 발생된다. 

또한, 미국이나 캐나다의 경우는 주로 사는 도시에 따라 연봉에 큰 차이가 있다. 한국의 경우, 직종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나, 아주 촌지방에서 서울로 일하게 되었다고, 급격히 임금인상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주 드문 경우인것 같다. 하지만, 미국이나 캐나다의 경우 소도시에서 5만불은 받던 엔지니어가, 대도시에서 8만불 받게되는 경우도 드물진 않다. 단, 높은 집세와 세금등을 감안하면, 결국 개인이 받는 금액은 대부분 비슷하거나 대도시 엔지니어가 더 적을 수도 있다.

예전, 한국에 한 회사에 있을때, 여러 해외 엔지니어와 함께 일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참 놀랐던게 이런 엔지니어들이 받는 연봉의 수준이었다. 거의 기본으로 15만불 (해외파견이어서 많은 인센티브가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혹은 어느 계약직 전문 컨설턴트 엔지니어 (Ph.D & 20년 이상의 해당분야 경력)의 경우 30만불되는 경우도 있었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그때 내가 봤었던 해외에 근무하는 엔지니어(물론, 연봉면에서는 큰 차이가 있지만,, ㅠㅠ)가 되어보니, 단순 연봉의 비교가 많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분은 연봉 5만불인데, 매일 새벽까지 일하는 분들도 있고, 어떤 분은 10만불에 칼퇴근 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가장 유용한 파라메터는 (연간 총수입) / 52 주(1년) / 40 시간 이다. 즉, 총연봉이 65000불을 52(1년)으로 나누면 주당 1250불이 되고, 다시 주당 40 시간으로 나누면, 31.25불/시간 이 된다. 즉, 시급 31.25불이 되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시급으로 맥도널드에서 5000원(한국)을 받는 다면, 5불로 계산해서 65000불을 받는 엔지니어의 약 1/6의 급여를 받는 것이다.(대충 1불당 1000원으로 계산)

이걸 유용하게 사용하기 위해서, 주당 40시간 대신 자신의 실제 근무시간을 넣는다면, (예를 들어, 어떤 IT에 다니시는 분이 80시간을 일한다면, 65000불을 받는다 하더라도, 15.6불 정도의 시급이 되고, 이는 맥도널드에서 일하시는 분의 약 3배를 받고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런 실질 시급(실제 근무시간)이 10불(캐나다의 최소임금)이하라면, 전직이나 자기개발을 통하여 개선을 하는 것이 장기적 미래를 위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한국이든 해외든) 만일 10불에서 20불 사이이고, 이민이나 유학을 통해 업그레이드를 하고 싶다면, 아마 성공한다면 대체로 만족할 만한 해외생활을 할 수 있을 거란 견해이다. 만일, 이미 30불 이상이라면, 한국에 체류하는 것이 낫지 낳을까란 생각이 든다. 이정도면 어느정도 한국에서 경력도 있고 한데, 해외에 나와서 성공가능성도 낮고, 성공해서 취업을 하더라도, 세금에, 높은 물가에. 실질 소득은 한국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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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취업 절차는 어떻게 진행되는가?

for_the_job 2012. 3. 24. 10:54
얼마전에 지인의 소개로 몬트리얼의 McGill 대학교에서 한국학생들을 대상으로 취업에 대한 세미나에 참석을 요청받았습니다. 학생들에게 이리저리 이야기할 거리를 생각하다 보니, 차라리 몇장의 프리젠테이션 화일로 만드는 것이 바쁜시간을 내어 참석하는 학생들에게 보다 정리된 생각을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아 만들었는데, 실제 세미나에서는 일정관계로 프리젠테이션을 하지는 못했네요.
필요하신 분한테 도움이 될 것 같아 올려 봅니다.


                         (프리젠테이션 내용중 일반적인 취업절차 부분만 차트로 소개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파워포인트
                           화일안에 있습니다.)

화일 내용은 제가 개인적으로 정리한 해외 취업 절차입니다. 프리젠테이션 화일이라 내용이 이해가 안되는 부분도 많이 있을 거이라 생각이 드네요. 절차는 자료에 나와있는대로 굉장히 일반적이긴 하지만, 경우에 따라, 전화인터뷰도 안 볼 수 있고, 심지어 온사이트 인터뷰도 없이 레주메만 가지고 입사가 결정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냥 제가 처음 직장을 구할때 경험했던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내용 중 10 HR 질문은 여기서 산 한권의 책에 나와 있는 내용인데, 아주 일반적인 내용이라 구체적으로 어느 책인지 언급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실은 책이 어디에 있는지 찾기가 어렵네요.ㅎㅎ)
필요하신 분들에게 유용하게 사용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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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백의 부모보험제도 (Quebec Parental Insurance Plan-QPIP)

Montreal 2012. 2. 5. 06:59

몇일전에 같이 일하던 동료가 Paternity leave (육아휴직-남성)로 6주 뒤에 보자며 빠이빠이 하고 집으로 갔습니다. 저두 작년에 아내가 아이를 출산했었는데, 여기 퀘백주 (전에는 다른 주에 살았었거든요)로 이사온지 1달만이라서 자격이 안되어서 신청을 할 수 가 없었죠.

자세한 내용은 QPIP로 구글을 검색하면 아실수 있을거구요.

 

간단히 설명하면, Maternity leave (육아휴직-여성)으로 여성이 1년을 쉴수 있으나, 출산직후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고, 그때 남편(혹은 이에 준하는)분이 몇주 쉬면서 방금 태어난 신생아와 아내를 돌보아야 하겠지요. 단, 캐나다내에서 일반적인 주의 경우 고용보험(Employment Insurance)에서 일정금액을 지급하게 되어 있는데, 그 금액이 너무 적어서  보통의 경우, 남편이 1-2주 후에 직장으로 복귀하게 됩니다.

 

퀘벡주의 QPIP는 이렇게 턱없이 부족한 EI 보다 좀 더 현실적으로 해당가정을 도와줄수 있게 5주간 주급의 70% (basic plan의 경우) 지원해 준다고 하네요. 대신, 매번 급여에서 무조건 일정금액을 떼어가지요. QPIP를 급여에서 공제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죠. 그래서, 첨에 급여명세서에서 QPIP를 봤을때, 뭐야 이거? 이런 생각을 했더랬죠.

 

첨에는 거부감이 많이 들었는데, 가끔은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렇게 나쁜건 아닌것 같아요. 물론, 혜택을 못 받는 사람들도 많고, 실제로 이득을 보는 사람은 적겠지만, 대신, 회사에 당당하게 5주 쉬면서, 가계에 경제적 부담없이 아이와 아내를 돌볼수 있으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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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취업의 문, 좌절 그리고 성취 (Part 2)

for_the_job 2012. 2. 4. 13:15
아래의 part 1에 이어서 계속이어 나가죠.

정말 끝없는 기다림과 기대감. 그런데, 인터뷰를 하고나면 거의 다시 연락이 오지 않더군요. 문제점은 뭘까? 왜 나는 안되는 것일까? 하여간, 이어지는 실패에 좌절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부족한 부분을 보충할려고 노력도 많이 했었죠. 여러가지 도움을 주는 무료 컨설팅(예를들어, YMCA같은..)곳도 여러번 찾아가고, 세미나 같은 것도 몇번 듣고, 멘토도 신청하고... 한 5개월쯤 지났을때, 한 리쿠르팅 회사에서 연락이 왔는데, 캐나다의 한 정부기관에서 일하는 단기 계약직이었죠. 그래서, 500km정도를 이사도 하고, 차도 사고 했는데, 출근하고 2주 지나서 Security Clearance 에 정책이 바뀌었던 모양인데, 제가 자기네들 기준에 맞지 않으니, 지금 당장 회사를 떠나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별일 아니니, 행정적인 처리가 지나면 곧 돌아올수 있을거야 라며 위로하더군요.
그로부터, 거의 한달이 지나서 나온 결론이, 제가 자격이 안된다며 2주치 월급 보내주겠다고 하더군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이 답답하더군요. 더군다나, 이사하면서, 주소랑 연락처가 모두 바뀌어 5개월 구직활동 했던걸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황당한 일이 발생한 거죠.

그렇게 한두달을 넘기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게 되었죠. 이메일 보내고, 팩스보내고...
다시 4개월 정도의 시간이 흘러갔을때, 리쿠르터 한 사람이 연락을 해서, 런던 (온타리오)에 한 회사에서 사람을 구하는데 관심이 있냐고 하더군요. 근데, 매니저 자리인데 어떨것 같냐고 하더군요. 사실, 매니저 자리가 무리이기는 한데, 그래도 저야 손해 볼 것 없으니 좋다고 했고, 그렇게 해서, 전화인터뷰와 온사이트 인터뷰를 마쳤는데, 한 이틀정도 후에 리쿠르터한테 전화가 와서 축하한다며, 저쪽에서 오퍼를 주겠다고 연락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정말, 날아갈것 같더군요. 어쩌면, 한 두달만 더 지나면 도저히 안될것 같아 차라리 한국으로 들어가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을때 였는데, 정말 마지막 순간에 그것도 원하던 분야의 회사로 취업이 되었죠.

그리고, 나중에 리쿠리터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사실은 그쪽에서 첨에 원한 건 매니저 였는데, 내부에서 한 사람이 매니저를 하기로 하고, 2명의 엔지니어를 구하게 되었는데, 제가 그 중에 한사람이 된거 더군요. 다른 한분은 저 보다 경력도 많고 이미 다른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었기에, 만일 제가 처음에 매니저를 구한다고 할때 안된다고 했으면, 가망이 없었겠죠.

하여간, 한참의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캐나다의 한 항공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다시 한번 이사도 하고, 집도 구하고, 회사도 출근하게 되었죠. 첫 출근하던날 얼마나 떨리던지... 내가 가면, 내가 하는 말은 이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내가 과연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여러가지 고민도 있었지만, 가서 직접 부딪혀 보니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니더군요. 마침 한국에서 한던 일과 똑같은 분야라서 어려움도 훨씬 덜했던 것 같네요.

벌써 4년전의 이야기네요. 그동안 말로만 듣던 레이오프도 당해보고(400명 직원중에 200명을 짜르더군요.), 덕분에 오히려 더 좋은 회사로 옮기는 계기가 되기도 했죠. 어차피 월급쟁이 인생이 한국이나 캐나다나 내일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삶이기는 하나, 이제는 작은 꿈을 꾸며, 오손도손 가족과 작은 것에 행복해 하며 살아 갈 수 있었으면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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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생산현장을 걷노라면...

say something 2012. 1. 24. 13:36
주 업무가 항공기 생산쪽은 아니지만, 가끔씩 생산라인을 지나가다 보면, 참 인간의 상상력의 한계는 어디까지 인지 궁금해 집니다. 물론, IT쪽의 급속한 발전에 비하면 금전적인 규모면에서는 다르겠지만, 우선, 사이즈가 엄청나게 크죠. 배 같이 건물 외부에서 만드는 구조물을 제외하고는 아마 가장 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지나가는 쪽은 주로 항공기의 cockpit 부분을 만듭니다. 항공기의 앞부분이죠. 일부 Airbus의 날개쪽 구조물이나, 후방동체를 만드는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거의 대부분 cockpit에 sub-systems를 만들더군요. 항공 엔지니어링의 재미있는 부분 중에 하나는 정밀도 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규모가 큰 Part들은 그 크기가 커지면서 당연히 공차도 늘어나게 되는데, 항공기 부품은 거의 1/1000 인치 단위까지 정밀해야 하니까요.

사무실에서 일할때는 정신없이 하는 일만하고,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잘 못 느끼는데, 가끔씩 이렇게 현장을 지나갈때면 '아, 내가 정말 원하던 곳에서 일하고 있구나!' 란 생각이 불현듯 듭니다. 한국에서 일할때도 항공쪽이었지만 방위산업쪽이었고, 전에 일하던 곳은 작은 2~5인승 항공기 개발이라, 같은 항공계열에서 일했는데도 느낌이 다르더군요. 지금 다니는 일하는 곳에서 지금까지 제작된 항공기들이 전세계에서 3초에 한대씩 이륙 혹은 착륙을 한다고 교육 갔을때 HR분이 이야기 하실때 원지 모를 자부심도 생기더군요.

사람마다 어떤 회사가 좋다 나쁘다를 평가하는데는 여러가지 요소들이 있겠죠. 페이나 안전성도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으나, 그렇게 바깥에 보이는 외적인 가치 보다도, 본인에게 중요한 내적인 가치도 간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인이 선택한 길이고, 그래서, 다른 길이 보다 예쁘고, 잘 꾸며져 있다고 해도, 내가 선책한 길이 더 소중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때로는 가시밭길도 있었죠, 어렵게 대학원 졸업하고 1년여동안 1000군데 이력서를 넣을때, 새로 태어날 아이를 위해 집을 산지 2주 만에 레이오프 되어서 심적공황으로 잠도 못잘때. 근데, 참 신기하게도 이렇게 저렇게 해서 다시 또 살아가게 되더군요.

지금이 살아가는데 지치고 힘들고 마치 벼랑 끝 같더라도, 다른 이와 비교해 초라해 보여도, 시간이 지나 뒤돌아 보면 아마 내 삶의 거름이 되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르는 것이지요.

많은 분들이 새해에는 조금 덜 아프고, 조금 더 행복해지는 한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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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40분에 퇴근하는 사람들 (몬트리얼)

say something 2012. 1. 19. 12:36
저는 몬트리얼의 한 회사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늘 오후 2시 40분쯤 되면 한 무리의 사람들이 바이바이 하고 퇴근을 한답니다. 처음엔 참 적응이 안되더군요. 전에 다른 지역의 다른 회사에도 flexible time system을 이용하여 출퇴근시간을 유연하게 하기도 했지만, 보통은 3시 반을 넘어서 퇴근을 했었거든요. 아마 여기도 처음엔 그랬던것 같은데, 몬트리얼의 교통체증이 가속하되면서, 점점 땡겨진게 지금은 2시 40분이 된 모양입니다. 그러니깐, 6시 출근을 해서, 40분 점심시간을 계산하면 8시간 40분을 회사에 있게 되는 거죠.

장점은 당연히, 원거리에서 출퇴근 하시는 분들에게 엄청나게 출퇴근 시간을 줄일수 있겠죠. 러쉬아워일때 10분 걸리던 거리가 1시간씩 걸리곤 하니깐요. 또하나 큰 장점은, 아마 맞벌이 하시는 분들에게 특별히 유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만일 커플중 한사람이 일찍 퇴근해서 아이를 픽업해서 올수만 있다면, 다른 한 사람은 아침에 아이들 아침먹이고, 학교에 데려다 주고, 9시쯤 출근해도 되니깐요.

단점은, 회사 내에서 회의시간 잡기가 좀 힘든것도 있고, 아무래도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과 9시 출근해서 5시 40분쯤 퇴근하는 사람들과 차이가 많다보니 업무조율에도 약간 아려움이 있긴 합니다.

물론, 모든 직원들에게 해당되는 사항은 아닙니다. 특별히, 자신의 일이 시간제약이 있거나, 다른 팀원들과 같이 일을 해야하는 테크니션 같은 경우는 주어진 출퇴근 시간을 엄격히 지켜야 하지요.

고용주냐 피고용인이냐의 입장 차이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수도 있겠지만, 좋은 직장문화가 있는 곳에 인재가 모이고, 이직률도 줄어 들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특히, 맞벌이하는 가정이 늘고 있는 한국도 이런 시스템을 도입하면 직원들 로열티가 엄청 올라가지 않을까요? 더불어, 줄어든 출퇴근 시간으로 개인의 삶의 질은 향상되고, 엄청나게 막히면서 생산되는 환경공해도 줄일수 있는니, 여러모로 좋을 것 같아요.

특히, 서울같은 교통정체가 심한 경우는 많은 기업들이 참여하면, 교통량도 분산되고 출퇴근 고통도 좀 줄고, 괜찮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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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취업의 문, 부서질때까지 두드리기 (Part 1)

say something 2011. 12. 2. 13:31
한국에서의 첫 직장을 잡을때의 일이다. 95년의 일이니 한참 전이긴 하지만,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아찔하다. 당시 울산에서 학교를 다니다, 취업시즌에 몇군데 넣은게 마지막 면접까지 떨어져서 막막할때쯤, 우연히 집 근처의 회사에 원서를 넣었다. 면접을 보고, 마침 울산에 있던 자취생활을 정리하고, 부산으로 이사를 했을때 였다. 그래도, 혹시나 몰라서 학과서무 보시는 분에게 혹시라도 면접된 회사에게 연락이 오면 꼭 연락해 달라고 부탁도 했었다. (어떻게 될 줄 몰라서, 일단 연락처를 학과사무실로 해 두었다.), 시간이 지나도 연락이 없길래 떨어진 줄 알고 있었는데, 우연히 울산에 들렀는데, 마침 학교에서 근로장학생으로 근무하던 룸메이트가 '너 혹시 전보온것 연락 받았어?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우리과 우편물 수령하려다 얼핏 보니, 너한테 온 전보가 있는것 같던데... 뭐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라고 할길래 그냥 내심 무슨 일일까? 하고 다음날 다시 울산으로 가서 학과 사무실로 가보니. 합격통지서가 전보로 와 있었다. 어이가 없어서 학과사무실에 어찌된 일이냐고 물으니, 학과서무 보는 분이 휴가라서 아무도 신경을 안 썼다는 이야기 였다. 게다가, 바로 다음날이 합격자 소집일이었고, 정말 단 하루만 늦게 발견했어도, 합격자 소집일에 참석하지 못했을 거고, 아마 합격취소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두번째 회사로의 이직은 정말 오래걸렸다. 꼬박 1년을 하루에 최소 3시간 이상씩 인터넷으로 취업사이트를 뒤지며 지냈던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맘에 딱 맞는 회사를 찾기가 어려웠고, Simens automotive 에 지원을 딱 한번 했었는데, 서류심사 조차 통과하지 못했는지, 연락이 없었다. 거의 1년만에 첫번째 직장의 경력과 비슷한 분야로 3년 8개월만에 두번째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다행히 처음에 회사에게 무척 어려웠음에도 조금만 견뎌서 다음회사에 입사할때 반드시 경력직으로 이직하자는 생각이 적중했는지, 다행히 경력직으로 두번째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오년을 전문 엔지니어 계약직으로 일하다가, 캐나다를 오게 되었고, 2년의 대학원 생활을 마치고, 다시 취업전선에 서게 되었다. 처음에 캐나다에 오자마자 잠깐 이민자학교에 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선생님 한분이 자기 학생중에 1000군데 이력서를 써서, 회사를 들어가게 된 분이 있다며 무척 자랑을 하였다. 그때 생각엔 어떻게 1000군데나 이력서를 넣을 수 있지? 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내가 바로 한 1000군데의 이력서를 쓰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어떻게 하든, 영어를 많이 배우고 싶었지만, 해외에서 그것도 처음하는 대학원 생활을 그렇게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시간도 없고, 대학원의 수업도 첫해에는 몇과목 수업이 있었지만, 2학기 수업이 끝난 뒤에는 논문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거의 혼자서 공부하는게 일반적이다. 그나마, 외국인을 위한 영어강좌와 논문지도 클래스가 있었고, EWB (Engineer Without Boarders) 클럽활동을 하는게 영어를 배우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학교를 졸업하고, 한달뒤 부터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지만, 부족한 영어에 허술한 이력서를 가지고, 아무리 많이 이력서를 보내봤자, 거의 대부분은 연락이 없었다. 그래서, 여러 군데 (학교, 취업 카운셀러 등등)을 많이 만나면서, 이력서 교정도 많이 받고, 책도 사서 읽었다. 가끔씩 보면, 몇몇 한국분들이 자신의 이력서를 굉장히 공개하기 꺼려하기도 하는데, 내 생각은 달랐다. 무조건 많은 사람들이 읽고 피드팩을 많이 받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떤때는 서로 상반되는 견해가 나오기도 했고, 별것 아닌것 같은 내용도 많지만, 좋은 의견을 많이 받아 들이고 적극적으로 수렴하려고 생각하면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가장 인상 깊었던 조언 중에 하나는 한글이름으로 된 부분을 삭제하라고 하시던 분이 있었다. 굳이 네가 외국인인걸 티 낼 필요 없다는 것이다. 어차피, 너한테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네가 나온 학교랑 회사이력보면 다 아는데, 굳이 첫인상을 외국인이라고 강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연락도 이메일로만 보낼게 아니라, 팩스로도 보내고, 전화도 가끔씩해서 진행사항도 체크해 보라고 권유해 주기도 했다. 또, 책에 보니, 되도록이면 전공 관련된 다양한 기관, 예를 들어, 나의 경우엔 항공협회에 나와있는 항공업체 리스트 에 있는 모든 항공업체에 이력서를 보내기도 했다.

이렇게 대충 오백개 정도 보냈을때, 한 두군데서 연락도 오고, 인터뷰도 가고 했었다. 어떤 사람은 인터뷰를 갈까말까 고민하는 분들도 많았는데, 나는 모든 인터뷰에 거의 다 갔다. 어디서 본 내용인데, '자기가 가고 싶은 회사에 인터뷰는 제일 나중에 가라'란 말이 있었다. 즉, 그동안 인터뷰를 보면서 실전연습을 하고, 내공이 많이 쌓였을때 정작 자신이 가장 희망하는 회사에 인터뷰를 가란 이야기 이다. 대충 100분데 이력서를 보내면 3-4군데에서 전화인터뷰가 오고, 어쩌다 한 두군데에서 온사이트 인터뷰가 오는 것 같았다.

나머지는 다음에 써야 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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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규제철폐, 영화 'Too big to fail'

say something 2011. 11. 23. 13:25
한국의 한미FTA가 한나라당의 기습처리로 국회를 통과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 한구석이 찹찹함을 느낀다. 솔직히 한국에 살지는 않아서 정확히 어떤 점이 손해이고, 앞으로 한국에 어떤 미래가 올 지 예상하기는 불가능 하겠지만, 예전 IMF와 여러가지 그 이후의 상황을 보면, 틀림없이 많은 국부가 유출될것이 불가결해 보인다.

사실 나는 엔지니어고, 경제에 대해서는 한참 무지한 상태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모순일수도 있지만, 이상하게도 FTA가 통과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영화 'Too big to fail' 이 자꾸 기억이 난다. (어쩌면 선무당이 사람잡는다고 사실을 너무 사실이상으로 확대해서 생각하는 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HBO이 만든 이영화를 보고, 규제없는 자유 무역주의자에서 약간의 규제주의자로 바뀌었는지 모른다.

2007~2008년 미국경제의 붕괴를 다른 영화/다큐멘터리 두편을 관심있게 봤었는데, 하나는 'inside job' 이란 다큐이다. 이 다큐에서 월가의 모럴 해저드를 비롯하여, 미국 정부의 부도덕성, 소위 말하는 이론 경제학자과 거대 자본들(리먼 브라더스, 모건 스탠리, S&P 푸어사 등등)의 단합등등..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미 자본주의 경제체계'의 배신감을 느끼게 해 주는 다큐였다. 더 웃긴건 이런 경제재난으로 서민들은 파산과 고통을 온 몸으로 안고 살아가는데 반해, 월가에 사람들은 정말 천문학적인 금액을 손에 쥐게 됬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돈은 미국 서민들이 피 땀 흘려 번 돈들이다.

'inside job'이란 영화에 이렇게 까인 미 보수세력들이 후원해 만든 영화가 HBO의 "Too big to fail'이다. (정확히 후원을 했는지 어땠는지는 알 수 없으나, 대충 스토리를 보니 후원했다고 할 만 한것 같다.)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인 미경제관료가 세계경제 붕괴를 막기위해 엄청나게 고뇌하며 고분분투하는 장면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몇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1) 한 여성분의 대사였던것 같은데 '우리가 지금 이런 사태를 만든 장본인들 한테 돈을 주며 이 고난을 막아 달라고 부탁해야 된다는 말인가요?' 라는 아이러니 2) 규제완화를 외치던 장본인들이 다 한통속(이론 경제학자, 미 경제 관료, 대통령 보좌관(?) 등이 대부분 전/현직 거대 자본들의 이사 혹은 사회이사 등으로 관련이 있는 인물들이다.)이었다는 점 3) 자본에서 리스크(Risk)가 분리되면서 결국 모든 이익은 몇몇의 거대자본들의 주머니로 들어가게 되는 천재적인 메커니즘 을 볼 수 있었다.

이 두편의 영상물과 한미 FTA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미국에서는 이제 이 메커니즘이 다 드러났고, 동시에 작용한다는 검증도 되었으니, 이것을 다시 재사용해 먹을 시장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고, 어쩌면 한국의 자본시장이 그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란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이번의 FTA를 계기로, 나중에 서서히 미국의 은행이 한국에 들어가게 된다면, 미은행의 Risk management방법으로 한국의 많은 은행은 큰 타격을 받을 거란 생각이 든다. 한국의 은행은 지금까지 너무 보호되어 왔다. 예를 들어, 새로 집을 사는 경우, 집을 담보로 잡고, 보증인 세우고 등등 절대 손해를 보지 않을 방법으로 지금까지 영업을 해 왔다. 미국의 은행은 5%만 다운페이를 하면 집을 살수가 있다. 1억원짜리 집을 사는데 500만원만 넣으면 되는데, 당연히 미국은행에서 론을 얻어서 집을 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럼, 미국은행은 9500만원을 신용대출 해주는 것일까? 당연히 아니다. 예를 들어 집을 경매로 팔 경우 약 6000만원 정도 받을 수 있다면, 3500만원에 대해서 일종의 보험을 드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행은 전혀 손해보는 것이 없다. 그리고, 약 3개월 연체되면 바로 경매로 내 놓는다. 실제, 지금 미국에서도 3개월 연체되면 바로 집 주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은행이 집을 경매로 내 놓을 수 있다. (덤으로 아마 부동산시장은 아마 미친듯 오르게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누구나 쉽게 돈을 빌릴 수 있는데 누가 집 사는 것을 참고 있겠는가?)
이런게 아마 Risk를 따로 분리해서 매매하는 경우인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보험회사들이 1차,2차 이런 순으로 생겨나고, 그 종류도 프라임, 서브프라임씩으로 나누어 매기게 된다. 그러나, 이미 미국의 경우를 보듯이 언제가는 이런 폭탄 돌리기 수법은 터지게 되어 있기 마련이고, 2007-2008년 미경제대란이 그 예인 것이다. (어쩌면, 한국의 경우, 부동산 버블과 함께 떠지면 대란이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든다.)
미경제대란처럼 결국은 나라가 대규모의 buy out을 실시하게 되고, 이런 돈이 금용업계로 들어가면, 그들은 그 돈으로 자신들의 월급 올리고, 직원들 보너스 주고 말 그대로 돈의 파티를 열게된다.

어쩌면, 10년 뒤, 미국경제대란과 똑같은 모양의 경제대란이 한국에서도 일어난다면, 지금 미국시민들이 그러는 것처럼 한국국민들도 엄청난 불황에 허덕이게 되지 않을까? 그러는 동안, 지금 미국의 월가가 미국시민들의 부를 훔쳤듯, 그때에는 아마도 한국의 부를 미국의 거대자본회사들이 훔칠 것이고, 미국정부는 세금을 걷으면서 희희낙낙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엄청난 이익의 대부분은 미국 자본회사들과 몇몇의 한국 대기업들에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된다.

솔직히, 비금융인으로 이 모델이 실현가능한 모델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미국에서 이미 규제철폐가 어떤 결과를 불러 일으켰는지 잘 알고 있고 심지어 영화로 까지 만들었는데, 다른 나라에 까지 전파하는 이유는 너무 뻔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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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가지 꿈을 따라간 15년 인생살이

say something 2011. 11. 14. 07:55
96년 대학을 학사로 졸업할 때, 다른 사람들은 한참 사진을 찍고, 아는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즈음, 똑같이 행복했어야 할 나는 그러지 못했다. 마침 어렵게 회사에, 그것도 당시에 대기업이라고 속하는 회사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음에도 나의 마음 한구속은 한참 검은 먹구름으로 뒤덮혀 있었으며, 당시 어머니의 애원에 겨우 한, 두장 사진만 찍고 졸업장을 빠져 나왔다. 대학을 입학하자마자 갑자기 가정형편이 어려워 졌고, 급기야 대학교 3학년때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집안은 겨우 친지들 도움으로 방한켠과 나의 졸업때까지의 등록금만 남았었다. 고등학교때까지 부족함 없이 철부지로 자라서 그런지, 그런 환경속에서도 마침 대학교 4학년에 되서야 학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경제사정때문에 대학원을 가지 못하게 된것이 못 내 아쉬웠다. 치기 어린 마음에서 일까? 결국 현실에 굴복하게 되었을때 오기로 라도 세가지는 꼭 해보자란 생각이 들었고, 어쩌면 어려운 현실에 대한 부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대학교를 졸업할때 나의 세가지 꿈은,
첫째, 해외여행을 많이 해보는 것 - 대학다닐때 일본을 여행해 보는게 꿈이었고, 고등학교때 시절부터 일본 배낭여행에 대한 세미나 (당시, 이규형의 배낭여행이란 제목으로 부산에서 세미나 같은 것 했었는데, 그때 그 이야기를 듣고, 대학만 가면, 바로 일본으로 여행을 할 수 있게 될 줄 알았다.)
둘째, 무조건 대학원을 졸업하기.
세째, 해외에서 살아 보기. (뭐 누구나 막연히 이런 꿈을 가질 수 있으나, 나의 경우는 초 중 고등학교 때마다 매년 부모님이 미국으로 이민 갈 것 같은 이야기를 자주 하셔서, 그걸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에 생긴 꿈이 아닐까 생각한다. 실제로, 미국에 많은 친척분들이 계시고, 어쩌면 기회가 되면, 미국 이민을 갈 계획도 있었으나, 매번 그 계획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첫번째 꿈은 그리 어렵지 않게 해결 되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자, 학생때와는 다르게 경제적 여유가 생겼고, 나는 기회가 될때마다, 일본, 홍콩, 마카오,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 싱가폴 등등을 전전하며 여름휴가를 보냈다. 처음 홍콩을 여행한다고 했을때가 98년이었는데, 직장내 다른 사람들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왜 출장이 아닌 다른 이유로 해외로 나가려 하는지, 아마 해외여행이란 아직 그렇게 익숙하지 않았을때 여서 더욱 그랬던것 같다. 그렇게 '앙코르 왓'과 '보르부드르 사원'등을 내 눈으로 보고 느꼈을때, 나는 여행이란 나의 꿈에 만취되어 있었다.

두번째 꿈은 몇가지 시도와 타협이 있었다. 첫 직장을 3년 8개월 정도 하고 났을때,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큰 돈은 아니지만 이리저리 저축한 것을 더하면, 어찌저찌하면 2년 공부를 할 동안 먹고 살 정도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몇군데의 대학원에 지원도 하고, 때마침, 한국항공우주산업에서 전문 계약직 엔지니어를 모집하길래, 그쪽에도 지원을 했었다. 나의 학부는 항공우주공학으로 한국항공우주산업에 입사하면 항공엔지니어로의 커리어를 시작하기에도 좋을 것 같았다.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가장 일찍 연락이 온 항공우주산업으로 이직을 하고, 항공 엔지니어로의 경험을 쌓기 시작하였다.
첫 직장은 대우정밀 이라는 대우계열사 였고, 항공우주산업은 삼성에서 마침 떨어져 나온 삼성계 회사였으니, 그래도 우리나라에 이름있는 회사를 두군데를 다녔었는데, 개인적으로 참 실망을 많이 한 것 같다. 물론, 일반적으로 급여나 복지 측면에서는 평균보다 훨씬 우위에 있는 두 회사였지만, 내가 생각하는 기업문화하고는 많이 달랐고, 외국에 기업문화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이런저런 생각중에 혹시나 유학이 어떨까 고민하고 있을때쯤, 아는 친구로 부터 캐나다 이민에 대한 정보를 알기 시작했고, 부족한 유학경비대신 이민자로 캐나다를 가는 것이 많은 메리트가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여러가지 정보를 모았다. 한국에 계실 모친이 걱정이 되기는 했으나,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지금 이런 모험을 하지 않으면, 다시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캐나다로 이만할 계획을 세웠고, 이로써 세번째 꿈까지 이룰 수 있었다.

결국, 04년 겨울, 나는 캐나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대학원 서류는 여러 캐나다 대학에 이미 제출해 놓았으나, 지원만 하고, 일단 나는 캐나다에 가서 살 예정이니 캐나다로 갔다. 거기서 몇개월 있으면서, 영어공부도 하고, 캐나다의 컬리지나 여러가지 가능성을 알아 보고 있었다. 다행히, 캐나다의 한 대학원에서 연락이 와서, 입학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두번째와 세번째 꿈은 이루어 졌다. 캐나다에 이민자로 살면서 학교에서 대학원 석사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07년 가을 나는 캐나다의 칼튼대학원에서 석사로 졸업을 하는 동시에... 백수가 되었다. ㅠㅠ. 당시, 나는 내가 세웠던 세가지 꿈들이 다 성취되었음에 만족함에도,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취업을 하기에는 내가 이미 캐나다에 투자한 시간이, 노력이 혹시나 캐나다에서 일자리를 얻는데 도약대가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기왕 여기까지 온거 외국의 회사에서 일한 경력을 만드는 것이 보너스 꿈이 되어 버렸다. 실은, 처음부터 나의 생각은 외국의 기업에 엔지니어로 일하는 것일지도 모르겟다. 위의 세가지 꿈은 결국 마지막 보너스 꿈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그렇게 미친듯 여름휴가때마다 혼자 해외를 쏘다녔던 건, 외국의 어려운 환경에 있을때를 대비한 훈련이 아니었을까? 두번째, 세번째꿈은 해외취업을 위한 선수과정이나 마찬가지 였던것 같다.

그리하여, 1년여년의 취업을 향한 노력은 08년 캐나다의 한 조그만 항공회사에 취직이 되면서 이룰수 있었다. 그리고, 11년, 그 회사에서 레이오프 됨과 거의 동시에 Bombardier Aerospace 라는 Boeing과 Airbus에 이어 세계 항공기 생산회사 3위의 회사에 입사하면서, 나의 15년 꿈의 인생은 안착할 수 있었다.

요즘엔 많은 사람들이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한다. 물론,아주 공감하는 말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꿈까지 버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내가 꿈을 버리고, 현실만 바라봤다면, 취업때 양복한벌 없어서 친구한테 빌려 입었던 사람이, 세계 3대 항공회사의 엔지니어는 될 수 없었을 것 같다. 나는 내가 특별히 공부를 잘하다건가, 훌륭한 엔지니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지, 내가 있는 자리에서, 무엇이 항상 최선이고, 내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를 늘 고민했던 것 같다.

현재의 나는, 아직도, 내일 어떻게 될 지 모르는 한사람의 엔지니어일 뿐이지만, 자신의 꿈은 자신의 힘과 노력에 의해 성취된다고 믿는 많은 사람들 중에 하나이다. 심지어 입에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이 비웃을 지라도.. So what, I don't c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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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reless Camera(WVC80N)로 꾸며보는 베이비 모니터

gadget 2011. 10. 25. 11:59
예전에 미국에 있는 누나를 만나러 갔었는데, 그때 막내조카가 아주 어릴때 였었죠. 그때 누나가 하는 말이 베이비 모니터가 있어서 너무 편하다고 하더군요. 아마 가끔씩 미국영화나 드라마 같은데 보면 나오는데, 아기옆에 마이크를 설치하고, 거기서 들려오는 소리를 부엌이나 거실에서 스피커를 통해 듣는 방법이죠. 이제 아주 편리한게,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경우, 대부분의 집의 구조가 1층은 거실, 키친, 2층에 주로 거주하는 방들로 구성되어 있죠. 따라서, 2층에 아이를 잠시 놔 두고, 1층의 부엌에서 무언가를 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 줄 모르니깐요,
그렇다고, 자는 아이를 매번 부엌으로 들고 내려오기도 애매하죠. 시끄러워서 애가 깨는 것도 있거니와, 아이를 들고 1층 2층을 왔다갔다 하는 것도 큰 문제죠.
얼마전에 저희도 아이가 생겨서, 어떻게 할까 고민을 했죠. 사실 저희 집은 지금 일반 콘도에 있기 때문에, 꼭 베이비 모니터가 필요없다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잠시라도 딴일을 할때 아이가 잘 못 될까봐 은근히 걱정이 되더군요.
그래서, 여기 저기 알아 봤는데, 소리만 들리는 베이비 모니터의 경우는 가격이 50불에서 100불 사이인 반면에 화면을 볼수 있는 것은 거의 200불이 넘더군요.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 생각해 본게 Wireless Camera를 사용해 보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에 개인용 security camera로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게 되면서 가격이 많이 떨어진것 같더군요.
그래서, 인터넷을 통해서 링크시스 Wireless-N internet home monitoring Camera (WVC80N)을 사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http://www.linksysbycisco.com/LATAM/en/products/WVC80N

가격은 130불 정도 했던것 같구요, 장점은 640X480해상도까지 지원되고, 광량이 적은 곳에서도 잘 작동되고, 설치가 쉽더군요. 단점은 마이크로폰이 노이즈가 너무 심해서 사실 사용 불가능이고, 그것도 MS-Explorer에서만 작동이 됩니다. 요즘에 비슷한 성능에 더 싸고, 마이크로폰이 없는 것도 있으니, 그쪽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 사용해 보니, 특별한 프로그램을 설치할 필요도 없고, 인터넷 웹브라우저에서 주소면 치면, 내장 프로그램이 작동하여 같은 네트워크에 있는 PC내에서는 바로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저 같은 경우는 집에 맥미니를 TV랑 연결해 놓았는데, 바로 사파리를 통해서 큰 TV로 볼 수 있으니 좋더군요. 그리고, ASUS eee pad transformer (허니컴)에서도 카메라 관련 어플을 이용하시면 바로 볼 수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셋업에 문제가 있어서 사용해 보지는 않았지만, 외부DNS서비스를 사용하면, 외부PC 및 휴대폰에서도 사용 가능하다고 하는 군요. 언제 어디서나 새로 태어난 아이를 보고 싶으신 분은 한번 시도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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