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9년차/캐나다 7년차 직장인이 보는 “미생”과 직장문화

say something 2014. 12. 27. 13:21

몇일 전에 드라마 “미생”을 마지막회까지 다 봤습니다. 많은 분들이 공감을 느끼듯 저도 많은 부분 공감하는 부분도 있었고, 드라마이기에 현실성이 많이 떨어지는 부분도 느낄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많은 드라마보다 직장인의 애환을 잘 녹여 만든 드라마라는 의견에는 이견이 없을 것 같습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많은 순간순간 느끼는 기분이 참 “애잔”했습니다. 왜 그런지 생각해보니, 마침 드라마의 배경으로 사용되었던 대우인터내셔날 이라는 회사가 제가 96년 대우그룹연수에서 어쩌면 같은 팀원으로 만났었을지도 모를 동기가 있을 지도 모를거라는 막연함 때문일수도, 혹은 드라마에서의 오차장이 어쩌면 그때 만났을 지도 모를, 이름 모를 동기와 지금쯤 비슷한 위치에 있을거라는 상상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같은 대우계열사라고 억지로 대우자동차에서 만든 차를 사야했고, 회장이 공장을 방문한다고 회사 창문에 올라가 유리창 딱아야 했던, 새로 부임한 임원이 마라톤을 좋아한다고 200 km를 뛰는 척해야만 했던 어이없던 시절도 생각이 나고, 매일 아직 길도 만들어 지지 않은 새로운 공장에서 밤 11시를 넘어 숙소로 돌아오면서 하루라도 9시 뉴스를 볼 수 있으면 더 없이 좋을 것 같았던, 지금도 어떻게 그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는지 의아해 지는 시간도 곱씹어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제가 일하던 분야는 엔지니링분야라 드라마의 세일즈 부서처럼 하루하루 전쟁같은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드라마에서 읽을수 있는 여러가지 회사내의 이야기들이 공감대를 형성하기에는 충분한 것 같았습니다.


몇년 지나지 않아 다른 회사로 옮기면서, 그나마 좀 어이없는 상황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한국기업의 부적절한 관행은 맞지 않은 옷을 억지로 입은 듯 불편했었던 듯 합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점점 더 일이 많아지고, 뺀질거리고 노는 사람은 시키기 귀찮으니 그냥 은근슬쩍 묻어가는 경우는 가장 흔한 경우고, 휴가라고 하루 쓸려면 뭘 그헣게 꼬치꼬치 캐묻고, 회사의 사규에 나와있는 휴가를 마치 상사가 허가해 주는 것 같은 분위기. 모든 공은 상사가 다 가져가면서 잘못되면 책임만 지우는 경우도 있고, 열심히 잘 일하는 사람보단, 열심히 아부 하는 이가 승진이 되는 줄서기 등등.


한국의 기업문화가 나쁜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팀내의 유대감이나, 끈끈한 조직력. 일에 대한 집중력의 세계의 어느 곳에서도 보기 힘든 저력이 있습니다.


그렇게 9년의 한국직장 생활을 마무리하고, 멀리 바다 건너 캐나다에 건너오게 되었습니다. 대학원을 마치고, 3000군데 이력서를 넣으며 좌절하던 중에 겨우겨우 캐나다의 한 회사에 취업을 하게 되었고,   몇년을 지나 지금은 두번째 회사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두 회사 모두 3000명 정도의 규모의 회사였는데, 캐나다에 와서는 처음에는 약 600명,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약 7만명이 근무하는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캐나다에서 약 7년을 근무하면서, 어떤 부분은 참 한국에서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기도 했고, 어떤 부분은 제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부분과 너무 맞은 것 같아서 신기하기도 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한국과 캐나다의 직장문화에서 가장 큰 차이점은 서로를 향하는 시각이 다른 것 같습니다. 한국 있을 때는 오직 상하관계만이 강조되었던 것 같은데, 캐나다의 경우 서로가 같은 피고용인으로 존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단지, 제가 생각했던것 보다는 조직생활에 질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강제에 의한 질서가 아니라, 서로의 존중에 의한 질서라는 생각이 됩니다. 이사가 사원한테 요구를 할때도 ‘…하라’고 강요하기 보다는 ‘.. 해 줄 수 있냐?”라고 표현을 합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No 라고 대답하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서로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이 있는데, 한국의 기업문화에서는 보기 힘든 기업문화 같더군요.


미생을 보며 참 애잔했던 부분 중에 하나가 아영이가 팀내에서 융화되지 못하고 겉돌때가 있었죠. 처음에는 그저 뛰어난 능력을 시기하는 바람에 생기는 팀내의 갈등이라고 생각이 되었지만, 어쩌면 한국 기업문화의 특이함에 대한 저항의 단적인 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한국의 경우 다양한 색깔의 개인이 개성을 무시 당하고 모두 같은 회색으로 탈색시키는 문화가 있는 반면에, 이곳의 경우 각 개인의 개성을 인정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고참 엔지니어가 기술적으로 도움을 주어서 일을 진행 시켜 나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각각의 젊은 세대의 창의성과 오랜 고참의 전문성이 잘 어우러져 다양한 색깔이 고루 어우러지는 그림이 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흑백그림이 더 잘 어울리는 경우도 있고, 다양한 색깔이 있는 컬러그림이 잘 어울리는 장소가 있기 때문에 어디가 더 확실히 늘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젊은 세대의 뛰어난 창의성이 구세대의 관습에 묻혀 버린다면 기업의 입장에서는 많은 손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미생에서는 우리의 직장생활에 대한 많은 명암들을 보여주었던 것 같습니다. 때론, 바꿀수 없는 현실에 좌절하고, 가끔은 부조리에 맞서는 그들은 보며 대리만족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머나먼 외국에 있지만, 어차피 직장생활이란 그렇게 많이 다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여기도 어떻게 보면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보이지 않는 선이 있기도 하고, 좋은 배경이 직장생활에 한국보다 훨씬 많은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단지, 한국에 있던 비논리적이던 불합리성이 많이 없는 편입니다. 서로의 시간을 존중해 주고, 회사생활보다는 가족생활이 중심이 되는 일터. 서로를 존중해 주고, 편가르기 보다는 화합을 중시하고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중요시 되는 일자리. 이곳에서 일하면서 저는 비로소 바로 맞는 옷을 찾은 것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공정함에 기반을 둔 기업문화이기에 고용 안정성이 한국에 비하여 한참이나 불안정하여도 만족하며 일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한국에서 생활했던 마지막 해인 2004년의 한국직장생활에 저의 생각이 머물러 있어서 정확한 지금의 현실은 많이 다를 수도 있고, 그동안 끊임없이 개선이 되고 있겠지만, 멀지 않아 한국에서도 공평하고 많은 사람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기업문화로의 변화가 이루어지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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