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해당되는 글 11건

  1. 2022.08.28 전자책 서점 리디북스, 윌라, 밀리의 서재 1달 무료사용기 [외국]
  2. 2021.10.24 캐나다에서의 디즈니 플러스 서비스
  3. 2021.01.31 50세의 내가 25살의 나에게
  4. 2020.11.15 애증의 도시, 내가 사는 곳
  5. 2020.10.17 코로나 시대의 취업과 실업
  6. 2014.12.27 한국 9년차/캐나다 7년차 직장인이 보는 “미생”과 직장문화 2
  7. 2011.10.06 우리는 꼭 "스펙"이란 단어를 사람에게 쎠야 할까?
  8. 2011.07.01 캐나다와 한국의 서로 다른 직장문화 5
  9. 2011.01.29 한국의 영어교육에 대한 개인적 견해
  10. 2010.07.29 캐나다에서의 직장생활

전자책 서점 리디북스, 윌라, 밀리의 서재 1달 무료사용기 [외국]

gadget 2022. 8. 28. 21:27

캐나다에 살며서 한국에 관해서 많은 아쉬움이 있다. 대표적으로 음식같은 경우, 짜장면이나 비슷한 간단한 음식은 집에서 해 먹기도 하고, 최근에 제가 사는 몬트리얼 외곽에 이상하게 한국식당이 여러군데 생기면서 한국식 치킨이나 닭갈비, 제육볶음, 순두부 같은 음식은 10분이면 나가서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한국 서적의 경우는 몬트리얼에서는 구할 수 없을 뿐더러, 토론토의 캘러리아라는 큰 슈퍼마켓에서도 아주 작은 책방이 하나 있을 뿐이다. 알라딘 US 같은 웹사이틀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책도 만만치 않기도 하고, 거기에 배송비랑 택스를 포함하면, 처음에 사고 싶었던 마음이 싹 사라진다.

다행히, 리디북스를 알고 부터는, 주로 리디북스에서 한국서적을 구매할 수 있어서 좋았다. 심지어, 책을 써서, 리디북스의 CP (contents provider)로 해외취업에 대한 전자책을 출간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좋은 환경이 되었지만, 아무래도 한국에서처럼 대형 서점을 방문해서 이리저리 책을 자유롭게 만지며 책장을 넘기며 책을 찾는 것이 가능한 상황은 아니었다. 뭐, 어차피 책을 시간도 없다는 핑계로 아주 가끔 일년에 한두번 생각날때면 사서 읽어도 만족할만 하였다.

 

근데, 최근에 한국에 여러 웹사이트에서 서점의 정액제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뭐 그런게 있는 모양이다.' 하고 넘어 갔는데, 광도도 많이 하고, 여기저기 리뷰도 많이 하길래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지난, 몇달간 리디북스, 윌라, 밀리의 서재에 해서 유투브 리뷰도 많이 보고, 실제 직접 사용해 보기도 하였다. 갑자기, 책도 리뷰하기 위해 엄청 많이 읽게 되었다. ㅎㅎㅎ

 

일단, 모든 서비스가 해외[캐나다]에서 가능했다. 단지, 결제가 문제가 있는데, 모두 구글스토어에서 앱을 다운 받아서, 구글에서 결제를 하면, 문제가 없다. 다만, 일부 서비스는 구글 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더 많은 비용을 내야 했다. 아마, 최근에 구글에서 30% 서비스비를 부과하게 됨으로써, 일부 서비스에서 그 금액을 소비자에게 부과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원래 밀리의 서재도 비슷하게 9.9불에서 12.X 불로 올랐으나, 해외 소비자들의 항의에 다시 얼마 전에 9.9불로 내렸다. 신기한 것은 미국도 9.9불 캐나다로 9.9불이어서 캐나다에 사는 사람들은 기분이 상당히 좋을 것 같다. 물론, 거기에 택스는 별로로 내야 한다. 사실 책 한권에 거의 10불이 너머 가는데, 정액제로 10불만 내고 5만권 혹은 10만권내에서 원하느 만큼 읽을 수 있다니, 책을 계속 읽는 사람들에게 이만한 서비스가 없는 것 같다. 꼭 한국에서만 이런 서비스가 있는 것은 아니고, 미국 아마존에서 하는 Kindle의 경우도, kindle unlimited 서비스가 있으니 참고해 보면 좋을 것 같다. 

 

리디북스는 원래 전자책 서점 시장이라, 정액제는 일부 서비스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기본 인프라가 단단하게 깔려있고 앱의 성능도 뛰어나서 안정적인 앱을 가지고 있다. 단지, 모든 책을 정액제로 서비는 하는 것은 아니고 약 5만권 정도만 서비스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얼마 전에 가격을 내려서 다른 서비스 보다 싼 가격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윌라의 경우는 배우 김혜수님이 모델로 나와서 인상이 깊었으니, 광고비를 제대로 뽑은 것 같다. 다른 서점과의 차이는 여기는 모든 책이 오디오북으로 알고 있다. 사실, 나는 오디오북에 대게 회의적이었으나, 이번에 리뷰를 하면서 다른 서점의 북들도 TTS 읽기(기계음으로 읽어 주는 서비스)도 사용해 보았는데,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예전에 잠깐 써 봤을 때는 '이걸 어떻게 듣고 있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최근에 엄청 많이 개선이 되었는 모양이다. 다만, 아직도 문장의 어디에서 쉬어야 하는지, 사람이 읽어주는 거랑 하늘과 땅 차이다. 월라의 경우 대부분 사람이 읽어주는 것을 레코딩한 것이라, TTS의 것보다 훨씬 낫기는 하지만, 책의 특성상 도표나 그래픽 같은 경우는 처리가 안되는 한계가 있다. 소설같은 분야는 크게 상관이 없을 것 같기는 한데, 일부 책에서는 좀 답답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가능하며, 그런 부분은 PDF나 별로로 찾아 볼 수 있게 해주면 좋을 것 같은데, 그런 서비스를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운전하면서 듣기에 되게 좋은 것 같다.

밀리의 서재는 리디북스와는 반대로, 단지 정액제만을 제공한다. 다만, 제공되는 책의 종류가 10만권이라고 하며 (아마 계속 늘겠지만), 또, 일부 책은 성우가 읽어주는 오디어북을 제공하기도 한다. 다만, 전자책 시장의 후발주자로 앱의 완성도가 많이 떨어져서 많은 유저들의 불만이 많기도 하다. 직접 경험한 적은 없어서 모르겠는데, 여러 플랫폼에서 문제가 많이 되고 있는 모양이다. 나 같은 경우는 지금 늘 쓰는 핸드폰으로는 주로 오디오 북을 다운 받아서 차로 운전할 때 쓰고, 다른 기기 로는 일반 책을 다운 받아서, 시간 날때 마다 읽는 걸 시도하고 있다. 또한, 추석이나 설날 같은 날에 특별한 프로모션으로 정액권을 여러 쇼핑몰에서 파는 모양이다.

 

세 서비스를 한달간 무료로 사용해 보았고, 지금은 밀리의 서재를 한달간 유료 결재를 하고 있는 중이다. 가능하면 장기결재를 해서 할인을 받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한국의 인증 시스템을 통과할 수 없어서 정액권을 사지도 못하고, 장기결재로 하지 못하고 있다. 왜 계좌이체를 할 수 없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한국의 결제 시스템 덕분에 한국의 9900원 보다 약간 높은 금액을 결재를 해야 하지만, 그런대로 한국의 서적을 거의 제한없이 볼 수 있는 것을 고려하면 괜찮은 것 같다.

:

캐나다에서의 디즈니 플러스 서비스

gadget 2021. 10. 24. 00:00

몇달째 디즈니 플러스를 가입해서 쓰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안본 디즈니 영화도 보고, 아이들도 재미있게 봤었는데, 아이들이 그렇게 관심을 가지지 않더군요. 저도 영화 몇 편보고 나니, 특별히 관심이 있는 것들도 적고 하네요. 어떻하든 유명한 것들 좀 볼려고 하는데 시간도 잘 나지 않고, 아주 가끔씩 크루엘라나 블랙위도우, 프리 가이 같은 영화가 나오긴 하는데, 그거 딱 보고 나면, 다시 또 볼만한거 나올때 까지 기간도 너무 많이 걸리구요. 가장 큰 단점은 저희 집은 아이들이 PS3로 넷플릭스와 유투브를 보는데, 디즈니 플러스는 PS4부터 지원을 해서, 아이들이 잘 볼 생각을 안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11월 런칭한다고 한글 자막이 몇개 나오기는 하는데, 앞으로 얼마나 나올 지도 모르겠고, 사실 콘텐츠 자체가 아이들용이 많아서, 어른 입장에서 막 보기에는 현재는 넷플릭스로 충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마, 한동안은 다른 서비스를 찾아 보던지, 몇개월에 한번씩 돌려서 가입하더지 하는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

50세의 내가 25살의 나에게

say something 2021. 1. 31. 08:34

즐겨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배성재의 텐인데, 거기에 게스트로 나오는 나미춘('나 미스 춘양이야' 의 줄임말)으로 불리는 윤태진 아니운서를 반 칠십이라고 배성재 아나운서가 몇 번을 놀려 먹는 걸 들으니, 언듯 예전에 제 25세 생일때 친한 후배가 꺽어진 쉰살이라고 놀리던게 생각이 나네요. 정확히 기억은 잘 안나지만, 대학교 4학년 때 쯤 되는 것 같습니다. 농담으로 한 말이라 웃으며 넘어갔지만, 그때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있을때라 그런지, 그 말을 듣고 하루이틀 정도 '과연 50세 때 나는 어떤 모습일까?' 라고 진지하게 고민한 기억이 어렴풋이 나네요. 

회상해 보면 당시가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대학교 3학년때 휴학을 하고 1년을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고 있을때, 갑자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게 되어, 당장 내일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대학교 3학년에 학업을 그만두고 생계를 이어나가야 하나? 생각했었는데, 다행히 친척들이 입시일반 돈을 모아, 저의 대학 등록금과 저희 가족의 작은 집의 전세금을 마련해 주셔서 그나마 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교 4학년 때는 학업은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늘 학교 취업게시판을 몇년째 매일 지나치며, 뭐 하나 라도 해서, 생활비를 조금이라도 보태야 하는 상황이라, 마음이 뭔가 늘 부족하고 쫒기는 듯한 때 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마음에 여유라고는 찾을 수 없던 그때에는, 25살이 뭔가 학생 신분이라 아무것도 할 수가 없고, 뭐 하나도 맘에 들 수 없는 마음이 가난한 시간이었고, 대학교 4학년이라는 때가, 취업이 될지, 나중에 결혼은 할 수 있을지, 정말 쉰이란 나이가 오면 나는 어떤 모습일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얼핏 떠오른 모습은 '30세쯤 결혼을 해서, 20살이 약간 안된 두아이가 있는 작은 아파트에서 오손도손 사는 정말 정말 평범한 가정만 이루었다면 참 원이 없을텐데' 라고 어렴풋이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 캐나다에 살고 있어 만나이만 쓰다보니, 잘 인식을 못하고 있었는데, 오늘 우연히 나이를 따져보니, 그때 그렇게 궁금했던 한국나이로 쉰살(50)이 되었네요. 결혼은 생각보다 늦게 38살에 하고, 아이들은 훨씬 어린 11살과 9살 두 딸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대학교를 졸업한 후 바로 취업이 되어 한국에서 두 곳의 직장을 다녔구요. , 34살쯤에 한국에서의 9년 직장생활을 뒤로 하고 캐나다로 홀로 이민을 와서, 캐나다에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첫 직장을 어렵게 잡고,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30대를 다 보냈고, 이후 몬트리얼 이란 도시로 이사를 와서 두 아이가 생겨나면서  오랫동안 원했던 직장에서 10년을 일하면서 40대를 다 보냈네요. 한국의 아파트에 살지는 않지만, 몬트리얼의 외곽에 작은 2층 집을 얻어 두아이와 아내, 한국에서 어머니를 모셔와서 5명이 살고 있게 되었네요.

 

25년 전, 25세의 그 당시, 앞도 보이지 않고, 언제가 이 긴 터널의 끝일지 감히 엄두도 나지 않았던 불안감과 불안정에 잠도 쉬이 오지 않았던 당시의 나에게, 질풍노도 같은 30대와 정신없던 40대를 거쳐 어느덧 쉰이란 나이에 안착하게 된 나는 '그렇게 걱정하지 말아요' 라고 전해 주고 싶네요.

그리고, 칭찬해 주고 싶네요. 무작정 걱정만 하기 보다는 그래도 조금씩 대학교때, 한국에서 직장 다닐때 조금씩 영어 공부를 해서 작은 준비를 했고, 캐나다 이민을 준비하기 시작했을 때도, 그냥 남들 같이 포기 하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10여권을 캐나다 이민 서적을 사서 읽고 밤새워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도, 떠나기 한달 전에도 두려움에 떨었어도, 결국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세상을 위해 용기를 내었던 것도.

캐나다에 와서 영어도 안되는데, 34살에 대학원에 들어가 밤을 세며 실험을 해서, 결국 논문 디펜스를 하고 졸업하게 된 것도. 07년 서브 프라임 사태에도 정신없이 3000곳에 이력서를 들이밀며 1년여의 취업전쟁 끝에 한국갈 비행기 값도 없을 때, 기적적으로 캐나다에서 첫 취업에 성공했을때.

 

남들 보기에 그렇게 큰 일이 아닐지 몰라도, 매 순간 열심히 살았고, 잘 하려고 노력했고, 무식하게 앞으로만 가서 어느덧 쉰의 나이에 도달하게 되었네요. 지금도 어떤 이들은 25년의 나처럼 앞이 보이지 않고, 힘든 사람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특히. 지금 같은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에는 더욱더 그런 젊은 분들이 상상 할 수 없게 많겠죠. 무조건 열심히 해서 모두 다 성공할 수 있다고 감히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매 순간, 본인의 삶에 충실하고 어떤 결정의 순간을 위해 조금씩 조금씩 준비를 한다면, 오랜 시간이 지나 원하는 곳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애증의 도시, 내가 사는 곳

Montreal 2020. 11. 15. 22:55

사람들의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던, 사는 도시를 사랑을 하는 동시에 미워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한국에서 여러도시를 살아봤고, 캐나다로 와서도 몇군데를 살아 봤지만, 처음에는 이런 저런 이유로 살게된 도시를 원망하고 미워하기도 했는데, 살아보니 그런데로 괜찮기도 한데 라고 느끼기도 많이 했습니다. 첫 직장을 부산에서 얻었는데, 3개월 일하고 충남 보령으로 발령이 났을때는 참 암울하기도 했습니다. 이름만 들어보았던 곳에 가서 살아야 된다는 것이, 부산에 사는데 굳이 거기까지 가서 일을 해야 하다는 것이 억울하기도 했지만, 달리 어디 갈데도 없었기에 억수같이 비가 내리는 가운데 텅빈 공장에 도착했을때 참 많이 어색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후 4년 뒤에 직장을 옮겨서 경남 사천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근처 진주에 방을 얻어 한 석달 살았는데, 이번에는 대전으로 파견이 되어서, 2000년 밀레니엄 축제로 한창일때 아는 사람 한명 없는 대전에서 집을 얻느라 이리저리 혼자 분주했던 기억이 나네요. 처음에는 너무 많이 시간이 남아서 뭘 해야 할지 한참을 방황했던 기억이 나네요. 주변에 아는 사람은 없고, 회사를 퇴근하면 별로 할일도 없어서 비디오를 빌려보던가 책을 보면서 하루하루 소일했던게 전부 였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 그때 많은 생각과 미래를 생각해 볼 시간이 생겼고, 결국 캐나다 이민을 결정하게 된 중요한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떠나기 마지막 1년은 주변에 인라인 스케이트 동호회에 가입도 하고, 스키 동호회도 알게 되어서 정말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게 보내게 되었기에 처음에 그렇게 낮설었던 도시가 20년이 지난 지금도 따뜻한 도시로 추억이 되어 정말 행복했던 순간으로 치완되어 기억에 남게 되었네요.

2004년 캐나다로 혼자 이민을 와서, 토론토, 오타와, 런던, 몬트리얼을 살게 되었습니다. 각 도시마다 장단점들이 있었지만, 가장 오래 사는 도시가 몬트리얼에 되었네요. 2011년에 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으니까요. 직장을 런던 (온타리오)에 있었는데, 대규모 레이오프로 직장을 다시 찾던 중에 몬트리얼에 오퍼가 나와서 이쪽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불어를 쓰는 도시라 내가 여기에 살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처음 캐나다에서 대학원 공부를 해서, 몬트리얼에서 약 2시간 거리인 오타와에는 3년을 살았었지만, 그때도 몬트리얼은 딱 2번인가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몬트리얼이라는 도시가 너무 싫었던게 불어가 우선으로 쓰이는 도시이기 때문에 도로이름부터 시작해서, 많은 문서가 불어만 있는 것이 많았고, 심지어 지금도 애들 학교에서 오는 모든 공문서를 불어로만 되어 있었습니다. 회사에서도 불어로만 메세지가 와서 매번 구글번역으로 영어로 번역을 해서 확인을 해야 하구요. 너무 불편해서, 어떻게 영어를 쓰는 곳으로 옮기려고 해도, 기회가 오지 않더군요. 게다가 토론토는 몬트리얼로 와 있는 동안 집값이 엄청나게 올라버리는 바람에 이제는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는 도시가 되어 버렸더군요. 이런저런 이유로 몬트리얼이란 도시에 지난 십년 동안 미움을 한참을 샇아가고 있었는데, 최근에 드는 생각이 그래도 여기라서 토론토보다 적은 금액으로 집도 사고, 또 오타와 보다는 훨씬 큰 도시라 애들하고 여러군데를 가면서 많은 이벤트를 즐길 수 있었으니,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특히, 제가 사는 곳 부근이 다운타운에서 많이 떨어져 있어서, 처음엔 한국분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최근에 한국분들이 엄청나게 많이 부근으로 이사를 오셔서, 특히 와이프가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우려 지내는 것 같아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이들이 불어 때문에 좀 어려워 하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습니다. 부모로서 불어를 못하니 도움을 많이 줄 수 없어 많이 마음이 아팠거든요. 어느 정도 크니, 본인이 알아서 영어를 불어로 바꿔서 쓰는 것 같고, 요즘에는 엄마나 아빠에게 한국말/영어/불어 를 바꿔가면서 설명해 주려고 하기도 합니다. 

 

한국이든, 캐나다든, 영어를 쓰던, 불어를 쓰던, 처음에는 내가 사는 도시가 참 낮설고 어렵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점점 익숙해 지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근처 마트나 가게들이, 하나둘씩 익숙해 지고 편해지면서, 우리는 그렇게 사는 곳에 사랑과 정을 하나씩 포게 놓게 되는 모양입니다. 

:

코로나 시대의 취업과 실업

say something 2020. 10. 17. 20:09

몇일 전에 미국에 사는 조카가 첫 직장을 잡았다고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두 군데서 오퍼를 받았는데, 엄마랑 아빠가 일하는 대학교 스탭으로 간다고 해서, 세명이 한 직장에 일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파트타임하는 와이프도 코로나 이전에 일하던 곳이 시간을 많이 줄여서, 아예 이번에는 추가로 다른 식당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지금 테잌아웃만 하는데도 엄첨 바쁘다고 합니다. 제가 일하는 회사에서도 용역업체 직원 한명은 몇 주전에 정식직원 오퍼를 받아 정직원이 되었고, 또 다른 한명은 용업업체 직원으로 새로 같이 일하게 되었습니다. 옆집에 사는 친구는 IT회사에 다니는데, 최근에 직장을 알아보고 있는데, IT쪽은 지금 엄청나게 사람들을 많이 뽑고 있다고 하더군요.

 

사실은, 지금은 코로나 여파로 인하여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고 실제 통계도 그렇게 나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항공정비로 일하는 지인 두명은 몇달 전에 레이오프가 되어서 아직 새직장을 잡지 못하고 있기도 하구요. 전에는 한두달 안에 새직장을 잡았는데, 지금은 항공쪽은 아예 수요가 없다고 하더군요. 몬트리얼의 식당들도 사람들이 안에서 식사를 못하고, 테잇아웃이나 우버나 비슷한 서비스를 이용한 딜리버리만 가능하기 때문에, 실제로 매출이 엄청나게 줄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같이 일하던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일을 못하게 되었죠. 안타깝게도, 이렇듯 코로나는 오히려 양극화를 늘리며 어려운 사람들은 더더욱 어려워지게 만드는 현상을 낳고 있네요.

이렇게 코로나로 인한 상황이 어려워지니, 제가 처음 캐나다에서 직장을 잡으려고 고생하던 2007년에서 2008년 사이가 떠오르네요. 당시,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로 온 세계의 경제가 추락하고, 많은 기업들이 도산을 하고 크게 규모를 줄이던 때였습니다. 아마 그때 이력서만 한 3000부는 넣은 것 같고, 인터뷰 보는 족족 다 떨어지고, 정말 수중에 한국으로 돌아갈 비행기값 마저 하루하루 줄어들고 있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디 정말 취업이 안되면 보호소 같은 곳을 가야 하는 것은 아닌지, 노숙자에서 음식물을 나눠주는 푸드뱅크를 가야할지, 정말 끝이 보이지 않는 나락의 끝에 있는 것 같은 하루하루였습니다. 다행히, 마지막에 극적으로 취업이 되어서  정말 다행이었죠.

이후에 나중의 취업을 위해 평소에 사고 싶었던 책 중에 하나를 샀는데 "What color is your parachute?"이란 책이었습니다. 여러번 개정이 된 이후에 제가 산 버전에 2008년에 미국의 취업를에 관한 내용이 있었는데, 데이터를 보여 주면서, 주변에 엄청 사람들이 직장을 잃으며 마치 아무도 사람을 뽑지 않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많이 줄어들었음에도 여전히 많은 일자리가 있었으며, 많은 사람들은 실제로 다시 새로운 잡을 찾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한국은 그나마 코로나로 인한 여파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래도 소상공인들, 취업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그 여파가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로 인하여 여러가지 면에서 고통받고 있을지 상상도 하기 어려운 시기입니다. 모두다 아프고 힘들겠지만, 그래도 어딘가에는 내가 설 자리도 있을 것이고, 또 언젠가는 코로나도 정복이 되어서 모두 다 같이 마스크를 벗고 예전 생활로 돌아갈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아이들이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노는 날들로 돌아가는 그날이 어서 오기만을 고대해 봅니다.

:

한국 9년차/캐나다 7년차 직장인이 보는 “미생”과 직장문화

say something 2014. 12. 27. 13:21

몇일 전에 드라마 “미생”을 마지막회까지 다 봤습니다. 많은 분들이 공감을 느끼듯 저도 많은 부분 공감하는 부분도 있었고, 드라마이기에 현실성이 많이 떨어지는 부분도 느낄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많은 드라마보다 직장인의 애환을 잘 녹여 만든 드라마라는 의견에는 이견이 없을 것 같습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많은 순간순간 느끼는 기분이 참 “애잔”했습니다. 왜 그런지 생각해보니, 마침 드라마의 배경으로 사용되었던 대우인터내셔날 이라는 회사가 제가 96년 대우그룹연수에서 어쩌면 같은 팀원으로 만났었을지도 모를 동기가 있을 지도 모를거라는 막연함 때문일수도, 혹은 드라마에서의 오차장이 어쩌면 그때 만났을 지도 모를, 이름 모를 동기와 지금쯤 비슷한 위치에 있을거라는 상상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같은 대우계열사라고 억지로 대우자동차에서 만든 차를 사야했고, 회장이 공장을 방문한다고 회사 창문에 올라가 유리창 딱아야 했던, 새로 부임한 임원이 마라톤을 좋아한다고 200 km를 뛰는 척해야만 했던 어이없던 시절도 생각이 나고, 매일 아직 길도 만들어 지지 않은 새로운 공장에서 밤 11시를 넘어 숙소로 돌아오면서 하루라도 9시 뉴스를 볼 수 있으면 더 없이 좋을 것 같았던, 지금도 어떻게 그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는지 의아해 지는 시간도 곱씹어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제가 일하던 분야는 엔지니링분야라 드라마의 세일즈 부서처럼 하루하루 전쟁같은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드라마에서 읽을수 있는 여러가지 회사내의 이야기들이 공감대를 형성하기에는 충분한 것 같았습니다.


몇년 지나지 않아 다른 회사로 옮기면서, 그나마 좀 어이없는 상황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한국기업의 부적절한 관행은 맞지 않은 옷을 억지로 입은 듯 불편했었던 듯 합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점점 더 일이 많아지고, 뺀질거리고 노는 사람은 시키기 귀찮으니 그냥 은근슬쩍 묻어가는 경우는 가장 흔한 경우고, 휴가라고 하루 쓸려면 뭘 그헣게 꼬치꼬치 캐묻고, 회사의 사규에 나와있는 휴가를 마치 상사가 허가해 주는 것 같은 분위기. 모든 공은 상사가 다 가져가면서 잘못되면 책임만 지우는 경우도 있고, 열심히 잘 일하는 사람보단, 열심히 아부 하는 이가 승진이 되는 줄서기 등등.


한국의 기업문화가 나쁜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팀내의 유대감이나, 끈끈한 조직력. 일에 대한 집중력의 세계의 어느 곳에서도 보기 힘든 저력이 있습니다.


그렇게 9년의 한국직장 생활을 마무리하고, 멀리 바다 건너 캐나다에 건너오게 되었습니다. 대학원을 마치고, 3000군데 이력서를 넣으며 좌절하던 중에 겨우겨우 캐나다의 한 회사에 취업을 하게 되었고,   몇년을 지나 지금은 두번째 회사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두 회사 모두 3000명 정도의 규모의 회사였는데, 캐나다에 와서는 처음에는 약 600명,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약 7만명이 근무하는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캐나다에서 약 7년을 근무하면서, 어떤 부분은 참 한국에서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기도 했고, 어떤 부분은 제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부분과 너무 맞은 것 같아서 신기하기도 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한국과 캐나다의 직장문화에서 가장 큰 차이점은 서로를 향하는 시각이 다른 것 같습니다. 한국 있을 때는 오직 상하관계만이 강조되었던 것 같은데, 캐나다의 경우 서로가 같은 피고용인으로 존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단지, 제가 생각했던것 보다는 조직생활에 질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강제에 의한 질서가 아니라, 서로의 존중에 의한 질서라는 생각이 됩니다. 이사가 사원한테 요구를 할때도 ‘…하라’고 강요하기 보다는 ‘.. 해 줄 수 있냐?”라고 표현을 합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No 라고 대답하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서로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이 있는데, 한국의 기업문화에서는 보기 힘든 기업문화 같더군요.


미생을 보며 참 애잔했던 부분 중에 하나가 아영이가 팀내에서 융화되지 못하고 겉돌때가 있었죠. 처음에는 그저 뛰어난 능력을 시기하는 바람에 생기는 팀내의 갈등이라고 생각이 되었지만, 어쩌면 한국 기업문화의 특이함에 대한 저항의 단적인 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한국의 경우 다양한 색깔의 개인이 개성을 무시 당하고 모두 같은 회색으로 탈색시키는 문화가 있는 반면에, 이곳의 경우 각 개인의 개성을 인정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고참 엔지니어가 기술적으로 도움을 주어서 일을 진행 시켜 나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각각의 젊은 세대의 창의성과 오랜 고참의 전문성이 잘 어우러져 다양한 색깔이 고루 어우러지는 그림이 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흑백그림이 더 잘 어울리는 경우도 있고, 다양한 색깔이 있는 컬러그림이 잘 어울리는 장소가 있기 때문에 어디가 더 확실히 늘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젊은 세대의 뛰어난 창의성이 구세대의 관습에 묻혀 버린다면 기업의 입장에서는 많은 손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미생에서는 우리의 직장생활에 대한 많은 명암들을 보여주었던 것 같습니다. 때론, 바꿀수 없는 현실에 좌절하고, 가끔은 부조리에 맞서는 그들은 보며 대리만족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머나먼 외국에 있지만, 어차피 직장생활이란 그렇게 많이 다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여기도 어떻게 보면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보이지 않는 선이 있기도 하고, 좋은 배경이 직장생활에 한국보다 훨씬 많은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단지, 한국에 있던 비논리적이던 불합리성이 많이 없는 편입니다. 서로의 시간을 존중해 주고, 회사생활보다는 가족생활이 중심이 되는 일터. 서로를 존중해 주고, 편가르기 보다는 화합을 중시하고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중요시 되는 일자리. 이곳에서 일하면서 저는 비로소 바로 맞는 옷을 찾은 것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공정함에 기반을 둔 기업문화이기에 고용 안정성이 한국에 비하여 한참이나 불안정하여도 만족하며 일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한국에서 생활했던 마지막 해인 2004년의 한국직장생활에 저의 생각이 머물러 있어서 정확한 지금의 현실은 많이 다를 수도 있고, 그동안 끊임없이 개선이 되고 있겠지만, 멀지 않아 한국에서도 공평하고 많은 사람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기업문화로의 변화가 이루어지길 기대합니다.

:

우리는 꼭 "스펙"이란 단어를 사람에게 쎠야 할까?

say something 2011. 10. 6. 10:46
오늘 자주가는 커뮤니티에 "스펙"이란 단어가 반복적으로 많이 나오길래 아쉬운 마음에 글을 적는다. 스펙.. SPEC 는 specification (사양)이란 의미로 쓰이며 주로 하드웨어의 성능비교를 위하여 사용되는데, 오랜 테스트 엔지니어로 때로는 spec을 만들어 제출하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떤 때는 맞는 스펙에 관한 장비를 써치하여 구매한 적도 여러번이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약간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듯하다. 어떤 사람의 학점, 언어실력 및 자격증, 유학경력등을 통털어 일컫는 말로, 예전에 어딘가에서 "네 스펙에 잠이 오냐?"란 말을 듯고 "풋"하고 웃으며 참 누가 저런 구절을 만들어 냈는지 참 대단하다 라고 웃으며 넘겼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아예 신문기사는 물론이고 일상용어가 된 "스펙". 언제부턴가 식상하고 '어떻게 기계에나 붙이는 단어를 사람에게 쓰게 되었을까'하는 의구심이 가시질 않는다.

어쩌면, 나에게는 이런 '스펙'을 사람에게 쓰는게 요즘은 아니고, 한 참 전으로 거슬러 올라 가는 것 같다. 한 10여년 전이었나? 당시, 해외유학에 관심이 있던 터라, 여기저기 유학관련 커뮤니티를 두루 섭렵하고 있을때 쯤, '저는 이번에 보스턴 대학에 입학하게 된 아무개입니다. 저의 스펙은 xxxx' 이라고 하며, 자신의 학점과, 토플, GRE점수를 공개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수백개의 대학이 있는 미국의 대학지원에서 무한정 지원할 수 없으니, 저런 가이드라인이 있으면, 자신이 지원할 학교수준을 대충 책정할 수 있어서 정말 고마운 정보가 아닐 수 없었다. 스펙을 공개하는 분들도 자신도 필요할때 저런 스펙을 보고 많은 힘들 얻었기에, 누군가에게 약간 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공개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이때의 스펙이 지금의 한국에서 일컫는 스펙으로 진화했는지는 잘 모로겠으나, 아주 무관하지는 않을 듯 싶다.

어떤 사람은 이런 방법으로 정형화, 표준화하여 구분하는게 더 편리하다는 논리를 내 세울수도 있을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이고, 어느 두사람도 똑같지 않다. 그럼에도 이런 획일적인 구분이 필요한 것 일까? 부모 잘 만나서 자가용 끌고 등하교하며 여유있게 공부해서 받은 3.0이란 학점이, 매일 아르바이트에 방학때는 공장가서 힘겹게 일하며 3.0을 받고 졸업한 사람과 같은 똑같이 구분되어야 하는가? 취업이 안되서 대학원 간 사람과 정말 공부가 하고 싶어서 10년간 자신이 모은 돈으로 겨우겨우 대학원 공부를 마친 사람은 같은 석사라는 학위로만 인정되는 것일까? 해외 나와서 한국 술집만 돌아 다니는 유학생과 눈물 콧물 흘리며 밤새며 공부했던 유학생은 그냥 유학생이란 타이틀외엔 차이가 없는 것일까?

이제 제발 시대가 어떻고, 사회가 저떻고 하며 핑계대는 일은 그만했으면 한다. 20년 전에도 똑같이 그랬고, 10년 전에도 늘 같은 상황인데, 늘 자신의 책임은 없고 바깥으로 책임을 넘기기만 하려 한다.

요즘은 꿈꾸는 젋은 사람들이 참 드문것 같다. 그냥 대충 공무원이나 해서 살지 뭐. 하긴 20년 전에도 '짧고 굵게' 보다는 '가늘고 오래'가 더 선호되었으니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은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가신 꿈 마저 날려버릴 필요는 없지 않을까? 꿈 꾸고, 그 꿈을 어떻게 하나 둘 실천해 나아가는냐 하는 것이 자신이 얼마나 알찬 삶을 꾸려나가느냐의 바로메터가 아닐까?

:

캐나다와 한국의 서로 다른 직장문화

say something 2011. 7. 1. 15:52
어느덧 캐나다에 와서 일한지도 4년차가 되어간다. 지금은 얼마전에 회사를 옮겨서 3주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전 직장과 지금의 직장이 규모면에서 큰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직장문화는 크게 다르지 않은것 같다. 다만, 한국에서 거의 10년에 직장생활을 하였는데, 지금쯤엔 한국과 캐나다의 직장생활을 어느정도 비교해 볼 수 있을 때가 된것 같은 생각이 든다.

사실 직장생활을 비교할때는 그 회사의 크기도 많이 영향을 미친다. 무조건 큰 회사가 좋은 것은 아니나, 회사의 기업문화는 400명일때와 3000명일 때는 확실히 다른것 같다. 캐나다에서 전에 다니던 회사가 직원이 400명 정도 였는데, 지금 6만명이 넘게 다니는 직장과 참 많은 면에서 차이가 난다. 오히려, 약간은 한국에 있을때(두 회사를 다녔었는데, 모두 3000명이 넘은 회사들이었다.) 분위기도 나는 것 같다. 파티션이 나누어져 있는 큐비클에, 비좁은 복도하며..

캐나다와 한국 직장문화의 가장 큰 차이점은 아마도 서열중심의 계급의식일 것 같다. 물론, 캐나다도 직위가 있고, 해당 직위에 따라, 같이 일하는 팀원들에게 적절히 일을 분배하고, 지시하게 된다. 또한, 그들에게는 팀원 중에 어려운 점이 없는지, 팀원끼리 의견충돌이 발생활 경우, 적절히 조율시키는 역활도 포함되어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간관리자의 경우, 위에서는 파워게임에, 팀원들 관리까지, 참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을 떠나온지 거의 8년이 되어서, 아마도 지금쯤엔 많이 바뀌었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예전에 한국에서 회사 다닐때의 획일적인 서열의식에는, 아직도 의아한 생각이 많이 든다. 왜 그들은 자기가 나이가 많고, 직위가 높으면 직위가 낮은 사람에게 막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지 알 수가 없다. 심지어 회식이나 사석에서도, 무슨 군대에서 부하인것 처럼, 상사에게 충성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는 것 같다.
한국에 있을때 가끔씩 "왜 벌써 퇴근하냐?" "퇴근후에 뭐하냐?" 란 이야기를 들을때 마다 이해가 가지 않는게, 왜 자신이 내가 회사와 계약한 8시간외 근무에 대해서 신경을 쓰는지 알 수가 없다. 물론, 일이 채 끝나지 않은 채, 무리하게 다음날로 업무를 넘기는 경우라면, 약간의 업무진행에 대하여 신경을 쓰는 건 이해할 수 있으나, 특별한 업무가 남아있지도 않을 상황에 '내가 남아 있는데 너는 무슨 배짱으로 벌써 가니?'란 시선으로 말하는 무능한 상사 밑에는 일하는 사람들이 안쓰럽다. 더군다나, 휴가를 낼때마다 왜 휴가를 내는지 물어보는 상사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필요해서 쓰는 휴가를 왜 자신들이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 하는지... 참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전에 한국 방문차 3주 휴가를 낸적 있는데, 매니저는 반응은 한국에 오랫만에 가니 잘 갔다오라는 한마디 였었다. 만일, 한국에서 3주 휴가를 낸다고 하면, 내 줄리도 만무하지만, 이런저런 잔소리를 며칠씩 들어야 하지 않을까?

기업문화, 직장문화는 기업의 성공을 좌지우지 하는 Key point중에 하나라 생각한다. 상사,부하 이렇게 이분법적인 사고로 서로를 나누지 말고, 서로 상대한테 고객이라고 생각하는 마인드가 필요한것 같다. 상사도 팀원을 고객으로 생각해서 어떤 서비스가 필요한지, 어떻게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팀원들의 요구에 유연하고 객관적으로 반응하는 한국의 직장문화가 하루빨리 정착되었으면 좋을것 같다.
:

한국의 영어교육에 대한 개인적 견해

say something 2011. 1. 29. 12:05

아는 지인들과 얼마전에 영어에 관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었는데, 이참에 개인적인 의견을 한번 적어본다. 한국에서도 토플, 토익과 현지인 영어회화도 많이 하고, 캐나다에 온지 7년차인데도 여전히 영어는 피할 수 없는 부담으로 다가온다, 아니, 20년 30년을 이곳에 사신 분도 특수한 몇분을 제외하고는 비슷비슷 한것 같다. 그동안 캐나다에서 특별히 오래 영어만을 공부한 적은 몇개월 되지 않지만, 그외에 대학원을 다니면서, 혹은 그전에 여러 캐나다의 영어 교육기관을 다니면서 다양한 형태의 영어교육 시스템을 접할 수 있었다.

우선, 이민자영어(LINK)라고 하여, 새로 캐나다에 온 영주권자들에게 주어지는 무상(프린티 가격이 필요한 경우 한 20불정도)교육도 들어봤고, 컬리지에 있는 ELS 가장 높은 단계(조지 브라운 컬리지의 레벨 8) 와 대학교에서 외국인 학생에게 하는 프리수업(주제없이 하는 디스컷션 위주의 수업). 기타, 발음과 영작 수업까지 다양한 수업을 들어봤지만 이러한 수업이 개인의 영어실력을 단숨에 올려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만일 이러한 수업을 오래 듣는 것이 영어 실력에 향상이 된다면 3년간 이런 종류의 수업만 들은 지인이 영어를 훨씬 잘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여러가지 노력에도 영어가 늘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 그만큼 "필요(Need)"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가장 흔한 현상은 처음으로 해외연수를 오는 학생들인 것 같다. 그들이 처음에는 무척 고생한다. 처음 외국인들과 대화를 시작하는 그들은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당황하면서 거의 손짓말짓으로 처음 몇달을 보낸다. 그러다가, 한 6개월 정도 지나면 대충 무슨 말은 하는지, 혹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서로 이해하게 된다. 그 이후에는 영어를 습득하는 체감지수가 급격히 감소한다. 따라서, 이때부터 영어가 잘 안된다는 느낌에 자포자기하며 6개월을 지내다가 한국으로 귀국하는 친구들을 심심찮게 봐 왔었다. 물론, 이때 슬럼프를 슬기롭게 극복하며 기대이상의 성과를 가지고 한국으로 귀국하는 드문 경우도 있다. 이렇게 몇개월 동안 급격히 영어가 늘었다고 느끼다가, 갑자기 슬럼프에 빠지는 이유가 아마 "영어"를 어느 정도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Need"가 갑자기 줄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처음엔 음식점에서 주문하라는 말도 들리지 않다가, 어느 정도 들리게 되면, 대충 이리저리 끼워 맞춰서 주문하면 본인의 불편함이 사라지고, 따라서 특별히 영어를 배워서 오더해야할 Need가 사라지는 것이다.

나의 견해에서 이렇게 변해가는 과정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영어란 하나의 랭귀지일뿐이고, 이것은 의사소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의사소통의 툴로 그 기능을 다하고 나면, 더 이상의 특별한 가치가 주어지지 않는 한, 더 이상 그 이상으로 발전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씩 이렇게 영어가 늘지 않는다고 고민하는 친구들에게 가끔씩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라고 조언해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Toeic을 900점이상 받는다던가, 토플, 아니면, 어떠한 특별한 부분의 단기과정 (예를들어, 6개월 단기 비지니스 과정아나 차량정비 등등).

가끔식, 한국에서 영어교육에 관한 내용이 나올때 마다 관심있게 보곤 하는데, 참 아쉬울 때가 많다. 예를 들어, 대학에서 하는 영어강의에 대한 찬반의 내용이 항상 나오는데, 개인적인 견해로는 참 부질없게 느껴질 때가 많다. 앞에도 말했듯이 언어란 사용해감에 따라, 그 의미를 갖는 툴인데, 학교 강의시간만 사용하고, 다시 한글로 번역해서 공부하는게 참 아이러니 하다. 대부분이 한국인 학생들 사이에서 교수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 영어로 수업하는 모습에 비취지는 건 전시행정이란 느낌 밖에 들지 않는다. 또 다른 시선은 조기교육에 관한 견해인데, 수천만원씩 써가며 방학동안 학생들은 외국으로 보내는 부모들, 멀리 오지로 학생만 덩그러니 보내는 부모들, 그리고, 한쪽 부모만 아이들하고 와서 배우자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분들은 무엇이 진정 자신과, 자녀, 배우자를 위하는 길인지 여러번 생각해 보아지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언어는 대화을 툴이지 미래에 대한 큰 자산이 되기 무척 어렵다. 많은 중학교 중반 이후로 유학온 학생들이 언어적, 감정적으로 현지인들과 원활히 소통하는데 어려움을 격고 있고, 이들이 나중에 현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할시 외국인이라는 신분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다시 말하지만, 언어는 communication tool이고 그 필요(Need)에 의해 습득하는게 가장 효율적인 학습방법이다. 인위적으로 배우려 할때는 그 목적(엉어 시험용? or 영어회화 or etc)를 분명히 하고, 막연히 스펙을 채우기 위해서나 어린아이의 허영심을 달래기 위한 목적으로 영어를 사용하는 분들이 적어 졌으면 한다.

:

캐나다에서의 직장생활

say something 2010. 7. 29. 10:54
오늘 문득 캐나다에서의 직장생활을 한국의 직장생활과 비교한다면, 어떤 분들에게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약 9년간의 직장생활을 했고, 이제 캐나다에서는 약 3년이 넘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어디든지 샐러리맨의 생활은 거의 비슷한것 같다.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의 저자 로버트 기요사키에 의하면 샐러리맨의 비애는 항상 들어오는 돈(월급) 보다 지출이 커진다는 것이다. 월급이 조금 오르면, 결혼헤서 지출이 늘어나고, 또 조금 오르면, 자녀가 태어나서 다시 돈이 모자르는 현상이 끊임없이 반복되며, 결국 늘 늘어나느 지출에 허덕이며 살게 된다는 것이다.

일단, 캐나다의 경우도 비슷한것 같다. 물론 사람마다 받는 급여가 다르고 경제의 기준이 다르니, 동일하게 비교한기는 뭐하지만, 결국 월급이 오르는 지출을 감당해 내기는 쉽지 않은것 같다.

일단 금전적인 문제를 2차적인 문제로 생각한다면, 캐나다의 직장생활은 한국의 그것과 참 많이 다른것 같다. 개인적으로 가장 긍정적인 부분은 권위주의와 퇴근시간이다. 물론, 캐나다에서도 일정 부분 권위의식이 존재한다. 만일, 정말 평등하게 사장에게 일반 사원이 불평, 불만을 한시간씩 늘어 놓는다면, 그 사람이 계속 회사에 남아 있을 확률은 극히 드물것 같다. 그런 상식적인 부분을 제외한다면, 캐나다에서의 권위의식은 한국하고는 상당히 차이가 난다. 한국에서는 어리다고, 직급이 낮다고 마치 부하처럼 이것 저것을 명령하고, 복사, 팩스 심부름 이나 시키는 반면에 캐나다의 경우, 위의 매니저가 일을 나누기는 하나, 필요한 서류작업이라든가 필요한 전산 업무등도 거의 특별한 일이 아니면 매니저 본인이 처리한다. 거의 60이 넘은 매니저가 엇그저께 들어온 20살 인턴한테 이런 저런 사항을 설명하는 것을 보면 각자의 업무scope을 분명히 하는 느낌을 받는다.
각자 주어진 일을 한고, 업무에 필요한 대화를 하고, 이런저런 눈치 안보고 정확하게 끝나는 시간에 '안녕' 하고 집에 가면 끝이다. 예전에 한국에서 아는 동기는 상사의 바둑, 장기 스파링 파트너 까지 되어야 하는 것을 봤는데,그런것이 없어서 참 편한것 같다. 물론, 가끔은 한국의 끈끈한 정이 1% 정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4시 반에 퇴근하는 지금의 라이프를 바꾸고 싶은 생각은 없다.

캐나다의 회사라고 모두 다 똑같은 환경인것은 아니다. 일부 IT에 일하시는 분은 정말 한국처럼 저녁 11-12시까지 근무하시는 분도 보았고, 심지어 토요일에 나가서 일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좀처럼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