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세의 내가 25살의 나에게

say something 2021. 1. 31. 08:34

즐겨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배성재의 텐인데, 거기에 게스트로 나오는 나미춘('나 미스 춘양이야' 의 줄임말)으로 불리는 윤태진 아니운서를 반 칠십이라고 배성재 아나운서가 몇 번을 놀려 먹는 걸 들으니, 언듯 예전에 제 25세 생일때 친한 후배가 꺽어진 쉰살이라고 놀리던게 생각이 나네요. 정확히 기억은 잘 안나지만, 대학교 4학년 때 쯤 되는 것 같습니다. 농담으로 한 말이라 웃으며 넘어갔지만, 그때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있을때라 그런지, 그 말을 듣고 하루이틀 정도 '과연 50세 때 나는 어떤 모습일까?' 라고 진지하게 고민한 기억이 어렴풋이 나네요. 

회상해 보면 당시가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대학교 3학년때 휴학을 하고 1년을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고 있을때, 갑자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게 되어, 당장 내일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대학교 3학년에 학업을 그만두고 생계를 이어나가야 하나? 생각했었는데, 다행히 친척들이 입시일반 돈을 모아, 저의 대학 등록금과 저희 가족의 작은 집의 전세금을 마련해 주셔서 그나마 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교 4학년 때는 학업은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늘 학교 취업게시판을 몇년째 매일 지나치며, 뭐 하나 라도 해서, 생활비를 조금이라도 보태야 하는 상황이라, 마음이 뭔가 늘 부족하고 쫒기는 듯한 때 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마음에 여유라고는 찾을 수 없던 그때에는, 25살이 뭔가 학생 신분이라 아무것도 할 수가 없고, 뭐 하나도 맘에 들 수 없는 마음이 가난한 시간이었고, 대학교 4학년이라는 때가, 취업이 될지, 나중에 결혼은 할 수 있을지, 정말 쉰이란 나이가 오면 나는 어떤 모습일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얼핏 떠오른 모습은 '30세쯤 결혼을 해서, 20살이 약간 안된 두아이가 있는 작은 아파트에서 오손도손 사는 정말 정말 평범한 가정만 이루었다면 참 원이 없을텐데' 라고 어렴풋이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 캐나다에 살고 있어 만나이만 쓰다보니, 잘 인식을 못하고 있었는데, 오늘 우연히 나이를 따져보니, 그때 그렇게 궁금했던 한국나이로 쉰살(50)이 되었네요. 결혼은 생각보다 늦게 38살에 하고, 아이들은 훨씬 어린 11살과 9살 두 딸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대학교를 졸업한 후 바로 취업이 되어 한국에서 두 곳의 직장을 다녔구요. , 34살쯤에 한국에서의 9년 직장생활을 뒤로 하고 캐나다로 홀로 이민을 와서, 캐나다에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첫 직장을 어렵게 잡고,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30대를 다 보냈고, 이후 몬트리얼 이란 도시로 이사를 와서 두 아이가 생겨나면서  오랫동안 원했던 직장에서 10년을 일하면서 40대를 다 보냈네요. 한국의 아파트에 살지는 않지만, 몬트리얼의 외곽에 작은 2층 집을 얻어 두아이와 아내, 한국에서 어머니를 모셔와서 5명이 살고 있게 되었네요.

 

25년 전, 25세의 그 당시, 앞도 보이지 않고, 언제가 이 긴 터널의 끝일지 감히 엄두도 나지 않았던 불안감과 불안정에 잠도 쉬이 오지 않았던 당시의 나에게, 질풍노도 같은 30대와 정신없던 40대를 거쳐 어느덧 쉰이란 나이에 안착하게 된 나는 '그렇게 걱정하지 말아요' 라고 전해 주고 싶네요.

그리고, 칭찬해 주고 싶네요. 무작정 걱정만 하기 보다는 그래도 조금씩 대학교때, 한국에서 직장 다닐때 조금씩 영어 공부를 해서 작은 준비를 했고, 캐나다 이민을 준비하기 시작했을 때도, 그냥 남들 같이 포기 하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10여권을 캐나다 이민 서적을 사서 읽고 밤새워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도, 떠나기 한달 전에도 두려움에 떨었어도, 결국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세상을 위해 용기를 내었던 것도.

캐나다에 와서 영어도 안되는데, 34살에 대학원에 들어가 밤을 세며 실험을 해서, 결국 논문 디펜스를 하고 졸업하게 된 것도. 07년 서브 프라임 사태에도 정신없이 3000곳에 이력서를 들이밀며 1년여의 취업전쟁 끝에 한국갈 비행기 값도 없을 때, 기적적으로 캐나다에서 첫 취업에 성공했을때.

 

남들 보기에 그렇게 큰 일이 아닐지 몰라도, 매 순간 열심히 살았고, 잘 하려고 노력했고, 무식하게 앞으로만 가서 어느덧 쉰의 나이에 도달하게 되었네요. 지금도 어떤 이들은 25년의 나처럼 앞이 보이지 않고, 힘든 사람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특히. 지금 같은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에는 더욱더 그런 젊은 분들이 상상 할 수 없게 많겠죠. 무조건 열심히 해서 모두 다 성공할 수 있다고 감히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매 순간, 본인의 삶에 충실하고 어떤 결정의 순간을 위해 조금씩 조금씩 준비를 한다면, 오랜 시간이 지나 원하는 곳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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